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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계 대거 참여 ‘성난 사람들’, 골든글로브 작품상·남녀주연상 석권
    [이코노미서울=연예팀] 한국계 배우·제작진이 대거 참여한 넷플릭스 시리즈 ‘성난 사람들(Beef)’이 골든글로브 시상식을 휩쓸었다. 7일(현지 시각) 미국 LA 베벌리 힐튼 호텔에서 열린 제 81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성난 사람들’은 작품상·남우주연상·여우주연상 등 3개 부문을 석권했다. 영화 ‘미나리’의 주연으로 잘 알려진 스티븐 연이 남우주연상, 앨리 웡이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올해 4월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성난 사람들’은 도급업자 대니(스티븐 연)가 난폭 운전을 하고 달아난 사업가 에이미(엘리 웡)를 추격하며 벌어지는 블랙 코미디. 사소한 사고로 얽히게 된 두 남녀는 일상에 쌓였던 분노를 쏟아내며 서로의 삶을 파국으로 이끈다. 스티븐 연은 수상 소감에서 “저는 항상 다른 사람들과 분리돼 있고, 고립돼 있다고 느껴왔는데, 막상 이 자리에 오니 다른 사람들을 떠올리게 된다. 마치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줄거리처럼 느껴진다”면서 아내와 딸, 함께한 제작진에게 감사를 표했다. ‘성난 사람들’은 공개 이후 넷플릭스 글로벌 주간 시청 시간 3위에 오르며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오는 15일 열리는 에미상 시상식에도 남우주연상, 감독상 등 11개 부문 13개 후보에 올라있어, 또 한번의 돌풍이 예상된다. 이밖에도 이날 골든글로브 시상식 영화 부문에선 ‘오펜하이머’의 크리스토퍼 놀란이 감독상, 킬리언 머피가 남우주연상,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에밀리 블런트가 남우조연상·여우조연상을 받았다. 여우주연상은 ‘가여운 것들’의 엠마 스톤에게 돌아갔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애니메이션 작품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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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1-08
  • 황희찬 멀티골...첫 EPL 두 자릿수 득점
    [이코노미서울=스포츠팀] 황희찬(27·울버햄프턴)이 리그 경기에서 멀티골을 넣었다. EPL 사무국 선정 경기 최우수 선수에도 올랐다. 황희찬은 28일 영국 브렌트퍼드 지테크 커뮤니티 스타디움에서 브렌트퍼드와 벌인 2023-2024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원정경기에 선발 출전, 리그 9·10호골을 몰아쳤다. 황희찬의 올 시즌 첫 한 경기 멀티골. 울버햄프턴은 4대1 완승했다. 7승4무8패(승점 25) 울버햄프턴은 리그 11위다. 9패째(5승4무)를 당한 브렌트퍼드는 승점 19로 14위에 머물렀다. 2021년 임대로 울버햄프턴 유니폼을 입은 황희찬의 첫 EPL 한 시즌 두 자릿수 득점. 또 최근 팀과 계약을 연장한 황희찬의 축포이기도 하다. 구단은 최근 황희찬이 물 오른 득점 감각을 보이자 그와의 재계약을 서둘렀다. 황희찬이 2028년 6월까지 계약을 연장했다는 보도가 이달 나오기 시작했고, 개리 오닐 울버햄프턴 감독이 15일 지역지와 인터뷰에서 재계약 사실이 맞는다고 밝혔다. 주급은 3만파운드(약 4960만원)에서 9만파운드로 3배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간 황희찬은 재계약 축포를 노렸으나 이달 초 번리전 선제결승골 이후 침묵했다. 4경기 만에 골맛을 본 황희찬은 내친 김에 멀티골을 퍼부었다. 황희찬의 리그 득점 순위는 단독 6위다. 11골 손흥민(31·토트넘)은 공동 4위를 달린다. 다만 황희찬은 이날 전반 추가 시간 허리를 부여잡고 쓰러졌고, 결국 교체돼 그라운드를 빠져 나왔다. 경기 후 중계 카메라에 잡힌 황희찬은 표정은 밝았으나 손을 허리에 대고 있었다. 정밀 검사를 거친 후 구단이 황희찬 상태를 밝힐 것으로 보인다. 황희찬 부상 정도가 심각하다면 다음달 AFC(아시아축구연맹) 아시안컵에 나서는 한국 대표팀에겐 큰 악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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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28
  • 댄스콘서트 ‘안녕하세요 한창호입니다’ 연말 공연 12.29~31 (CKL 스테이지)
    자전적 서사로 풀어내는 춤과 이야기, 댄스콘서트 ‘안녕하세요 한창호입니다’ 개막 삶을 이야기하는 플레이리스트와 함께 연말을 따뜻하게 보내는 시간 마련 2023 서울문화재단 장애예술인 창작활성화, 한국콘텐츠진흥원 지원 [이코노미서울=전광훈기자] 공연의 주인공이자 창작자인 한창호는 온앤오프무용단의 대표이자 안무가, 무용가이다. 오랜시간을 무용에 매진해온 그의 이야기가 하나의 플레이리스트가 된다. 쉼 없이 달리며 이어온 누군가의 삶과 시간을 보살피고 응원한다. 온앤오프무용단의 안무가 한창호가 조금 특별한 공연, 댄스콘서트 <안녕하세요 한창호입니다>를 선보인다. 오는 12월 29일(금)부터 12월 31일(일)까지 CKL스테이지에서 개최되는 본 공연은 춤과 움직임에 이야기와 음악이 더해진 공연으로 무용과 토크 콘서트의 형식을 결합했다. 댄스콘서트 <안녕하세요 한창호입니다>는 무용인으로 살아온 한창호의 삶과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예술의 현장에서 가슴을 울리는 순간과 진정성에 주안점을 두며 춤과 함께 삶을 살아온 한창호는 작품 <가난한 사랑>, <아스팔트 블루스>, <스텝 바이 스텝>, <웜바디> 등을 통해 전쟁과 평화, 인류와 삶의 이야기 등 진솔한 사고와 표현을 담은 무용 작품들을 선보이며 예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무대와 거리를 오가는 그의 자유로운 춤은 생기를 잃어가던 철공소 일대에 활력을 불어넣었고, 문래예술촌의 초기 동력을 만드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춤을 추게하는 원동력으로부터 삶을 되감기하는 서사가 펼쳐진다. 어느날 갑작스러운 수술로 장애를 얻게 된 이후, 한창호는 용기를 내어 다시 무대에 서기 위해 동료 창작자들과 스태프들에게 솔직하게 몸의 상태를 털어놓는다. 이후 한창호는 스스로를 춤추게 하는 원동력이 무엇인지 질문하며, 세심한 관찰을 통해 나 자신을 이해하고, 이전과는 다른 속도로 천천히 움직이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춤을 창조하려고 노력한다. 본 공연은 그의 자전적 서사를 풀어내며 그는 어떻게 춤을 시작했을지, 그의 춤은 어떤 이야기들과 함께 흘렀을지 살핀다. 다만 한창호의 신체적 도전은 작품의 핵심이 아니다. 무용과 이야기가 결합된 이 무대에서 한창호는 매 순간의 아름다운 춤과 생동하는 이야기를 통해 예술이란 무엇인지를 다시 선보이고자 한다. 이를 통해 이 작품은 단순히 장애 예술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춤과 이야기를 조화시키며 관객들과 교감하고자 한다. ”춤은 나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치유의 과정이다. 이제는 더 나은 삶을 위해 춤추며 나아가고 있다” - 안무가 한창호의 글 중 공연에 사용되는 노래들을 살펴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다. 공연에서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를 비롯하여 이소라의 ‘사랑이 아니라 말하지 말아요’, 소코도모의 ‘회전목마’ 등 누군가의 삶에 한번쯤 말을 걸었을 법한 노래들과 함께 한창호와 4명의 무용수들이 춤을 선보인다. “90년대를 떠올리면 고등학교 기숙사 생활이 생각나네요. 저는 광주체육고등학교에서 태권도 선수로 학교생활을 했습니다. 목표는 전국대회에서 메달을 많이 따는 것입니다. 일과는 새벽 운동, 오전 수업, 오후 운동, 야간 운동으로 돌아갑니다. 그때는 우리를 '한창호와 아이들'이라 불렀고, 서태지와 아이들이 한창 인기있던 시기 우리는 자연스럽게 춤의 세계에 빠져들었어요. 1992년 3월, 돌이켜보면 정말 소중한 순간이었습니다.” - 공연 <안녕하세요 한창호입니다> 중 본 공연은 전 회차 실시간 자막을 제공하며, '릴렉스드 퍼포먼스'의 형식을 통해 자폐 스펙트럼이나 지적 장애 및 신경 다양성을 지니고 있는 이들 역시 공연을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도록 빛과 소리, 관람 환경을 조성한다. 예매는 플레이티켓(www.playticket.co.kr)에서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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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28
  • 방망이 하나로 '1462억 잭팟'…선택 받은 이정후
    [이코노미서울=스포츠팀] 메이저리그(MLB)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한국인 외야수 이정후(25) 영입을 공식 발표했다. 샌프란시스코는 15일(한국시간) 구단 공식 소셜미디어(SNS)에 영어와 한글로 "이정후 선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 온 걸 환영합니다"라는 인사를 남겼다. 이어 보도자료를 통해 "이정후와 계약기간 6년 총액 1억1300만 달러(약 1462억원)에 사인했다"며 "2027시즌이 끝난 뒤엔 옵트아웃(구단과 선수 합의로 계약 파기)할 수 있는 조항도 포함했다"고 전했다. 샌프란시스코는 또 "이정후는 내년 연봉 700만 달러를 받은 뒤 2025년 1600만 달러, 2026년과 2027년 2200만 달러, 2028년과 2029년 2050만 달러를 받게 된다"고 전했다. 계약금 500만 달러는 별도로 수령한다. 이정후와 샌프란시스코 구단은 매년 자선 기부 계획도 발표했다. 내년 6만 달러, 2025년 8만 달러, 2026년과 2027년 각각 11만 달러, 2028년부터 2029년까지 매년 10만2500달러를 기부하기로 했다. 이정후는 포스팅(비공개 경쟁 입찰)으로 MLB에 진출한 한국인 선수 중 역대 최대 규모 계약을 해냈다. 2013년 류현진이 LA 다저스에 입단하면서 받은 6년 3600만 달러의 종전 기록을 11년 만에 넘어섰다. 연평균 최고액도 갈아치웠다. 종전 기록은 김하성(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이 2021년 사인한 연평균 700만 달러(4년 2800만 달러)였다. 이정후는 연간 약 1883만 달러(약 267억원)에 계약해 김하성보다 2.5배가량 많은 금액을 보장받게 됐다. 이정후는 2017년 넥센(현 키움) 히어로즈 1차 지명을 받고 프로에 입단한 뒤 7시즌 통산 타율 0.340을 기록하면서 KBO리그를 대표하는 타자로 자리 잡았다. 데뷔 첫해 신인왕을 차지했고, 2021년 타격왕·2022년 정규시즌 MVP 트로피를 잇달아 들어 올렸다.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이끄는 등 국가대표 중심타자로도 활약했다. 그는 올 시즌이 끝난 뒤 원소속구단 키움의 동의를 얻어 MLB 포스팅에 나섰다. 올 시즌 부상 여파로 86경기(타율 0.318) 출전에 그쳤지만, 걸림돌은 되지 못했다. "MLB 30개 구단 중 20개 팀이 이정후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샌프란시스코 외에 뉴욕 메츠, 샌디에이고, 뉴욕 양키스 등도 영입전에 뛰어들었다. 결국 가장 적극적으로 러브콜을 보낸 샌프란시스코가 과감한 금액을 베팅해 이정후를 낚아챘다. 이정후의 입단 기자회견은 16일 오전 6시 홈구장 오라클파크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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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17
  • (에필로그) 전광섭의‘진주알들의 숨바꼭질
    친구, 한 밤중이다. 곤한 잠을 방해하긴 싫소만 나의 울분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네요. 결코 수필의 끝을 봐야하는 이유가 분명하오. 내가 지면을 빌어 시를 낭송하는 건 결코 아니외다. -그동안 파월장병보상요구는 수없이 많이 보아왔지만 모두 유야무야 용두사미로 맥이 끊기고 말잖소. 정치로 푼다? 사람으로 풀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요. ‘파월장병보상대책’ *원칙 납세에 의한 국가재정에 의존하지 않는다. *재원조달방법 첫째 국가는 파월공로에 대한 기억지우기를 하지 말라..전 정권의 공적을 폄하 내지 당사국의 눈치를 보지 말아 달라..피땀 흘려 국고에 보탠 우리백성에 대한 보상이므로 베트남과의 관계에 금이 간다는 얄팍한 이론은 성립시키지 말라. 둘째 보상재원은 고속도로건설의 가장 큰 수혜자인 대기업의 몫으로 본다...이들은 기업이윤의 사회환원 이라는 도덕적 차원으로 나라사랑의 애국기업이 되어 달라. *원로 박찬종변호사의 견해를 참고한다. 이는 정권이 바뀌면 크게 두 가지가 흐른다고 말했다. 그 첫째는 돈이 흐르고 둘째는 사람이 흐른다고 했다 옛말에 ‘주인이 바뀌면 머슴도 바뀐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주인이 바뀌면 돈이 몰린다는 얘기는 들어 본적이 없다...그러나 실재는 돈이 권력자에게 몰리는 현실을 수없이 보아 온 우리국민이다... 이제 권력자는 대기업의 약점을 빌미로 그들의 목을 옥죄어 권력자가 치부하는 일을 삼가고 그 돈의 흐름을 파월장병보상에 쏟게 해서 후대에 이들의 원성을 없게 해 달라. 참전 연인원 32만 중 1만명 전상, 5천명 전사 그간 세상 떠나고 생존인원 17만명. 이 생존자가 하루 빨리 죽어 없어져 파월병의 피 값이 국가부흥의 마중물이 되었었다는 공로가 국민의 뇌리에서 사라지길 바라지는 않겠지… 권력자는 전(前)정권, 현(現)정권의 공로를 따지지 말고 시원한 결심을 해 달라. 그리고 젊은 세대 피 흘린 애국심을 자손만대 잇게 해 달라. 그러면 이들에게 베풀어야 할 보상금액은 얼마나 되나? 나는 예편이후 수많은 보상액의 산정방식을 듣고 보고 해왔다. ‘브라운각서’에 의한 미국의 지원금을 호프만식 산정방법 등을 내세워 천문학적 금액이 탄생되는 걸 보았다. 당시 한글도 제대로 쓸 줄 몰라서 가정통신을 대필해 주던 병사들이 수두룩할 때였다. 이런 우리들이 천문학적 벼락부자가 될 수 있다는 꿈으로 간땡이 바람만 잔뜩 넣어주는 글쟁이들의 사고를 미안하지만 나는 거부하고 싶다. 젊은 피로 나라에 돈놀이 하는 국민의 대열에는 서기 싫다. 나는 내가 가장 신뢰했던 나의 부하였던 한 소대원과의 대화를 가장 큰 표본으로 삼고자한다. 그가 1년을 보병소총수로 정글을 누비다가 1967년 말에 병장으로 귀국했다. 매월 300불씩 국고에 들어가고, 현지 수령액이 53불, 환율은 750:1 그런데 지금과의 화폐가치를 무시할 수는 없다. 그가 출발 전에 버릇없는 이웃중대의 병사와 다투다가 이빨을 부러뜨린 사고가 있었다. 두 당사자를 데리고 서울역 앞 치과에서 치료해 줬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 병사는 서울 안암동에 살고 계셨던 이모에게서 치료비를 빌렸었다. 이제 귀국 후 그 빚을 갚아 주러 갔을 때 그 이모님이 조카에게 집을 사 두라고 권유하더란다. 호주머니에 담아 온 돈이 25여 만원. 이걸로 35평 정도의 단독주택이 가능하다는 얘기였단다. 1967년도의 실상이었다. 지금 시골도 아닌 서울 안암동에 그 정도 집, 이것이 최하의 경우 무허가 건물이라고 가정해도 3억 이하가 될 수 있겠나. 이 한 구석의 자그마한 예를 들었지만 이런 기준을 무시하면 되겠나! 고대사에 국가가 없던 때는 권력자들이 백성을 노예로 팔아먹던 시절이 있었다. 이에 비추어 무지몽매했던 파월병사들이 떼를 지어 연일 도로를 점령하고 대통령을 향해 온갖 욕설을 해대던 방법을 택할 수도 없고, 또 그렇게 해서도 국민의 도리가 아니다. 국가의 어른이 나라를 재건하겠다는데 불평 한마디 않고 순응했었다. 자! 지금도 국가는 우는 아이에게만 젖을 줄 것인가? 큰 모성애를 기다릴 뿐이다. [전광섭·국가유공자·베트남전쟁참전 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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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9-15
  • 덕수궁 돌담길/류시호
    덕수궁 돌담길 20대 초반 친구들 여름비 맞으며 이화여고 정동교회 돌담길 걷고 꿈, 희망, 낭만을 키웠다 아관파천 고종황제 경운궁에서 양탕국 즐기며 대한제국 세계에 알렸다 신중년 보내며 그때의 친구들 개화기 역사 현장 덕수궁 세계 1등 국가 기원하며f 돌담길 걸었다. [류 시 호 / 시인 수필가] * 아관파천 :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긴 사건 * 양탕국(가비차, 가베차) : 구한말 개화기 때 커피 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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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7-15
  • 10)전광섭의 ‘진주알들의 숨바꼭질’
    철창신세가 며칠 동안이나 지났는지. 지금처럼 휴대폰이 있던 시절이 아니니까 갑갑한 마음을 털어놓을 데가 없다. 제일 궁금했던 게 내가 왜 여기를 왔는가 하는 의구심이다. 설마 전투 중에 도망가던 포로를 죽인, 그것도 고함치며 작전을 노출시키던 놈을 하나 죽인 것. 이게 사건이라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처사다. 나는 반성은커녕 날마다 불만만 쌓여가고 있다. 40명의 목숨을 관리하는 소대장 한명을 이처럼 헌 신짝처럼 처박아 놓는다면 이게 얼마나 큰 비전투 손실인가! 참으로 군대는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버리는 이율배반의 집단이란 말인가? 중대장, 대대장, 연대장...그리고 사단장까지도 악수하며 아껴주던 나였는데 이토록 감감무소식 철창신세라. 울분을 삼키지 않을 수없는 나날들이 계속 흐르고 있다. 너무 긴 시간이 흘렀던 것 같다. 내가 이러고 있는 시기에 나의 훈련시절 단짝이었던 A중위가 야간 매복근무 중에 적으로부터 역매복을 당하여 수류탄 공세를 받고 산화한 사건이 있었다는 것을 50년 후에 알게 되었다. 내가 3소대장이었고 그가 2소대장으로 같은 중대내의 단짝인 동료였었고, 특히 갑종장교의 육군보병학교 191기 4구대(4반) 바로 옆자리 클라스메이트였었던 친구다. “아~나를 이곳 영창으로 잠깐 피신시켜 주신 그분...” 계속 불만투성이로 지내오던 긴 날들을 일순간 감사와 뉘우침의 순간으로 깨닫는 것을 실토하지 않을 수 없다. 홈바산의 그토록 길던 야간매복, 첫 기습을 받을 때 바로 옆에 피할 바위를 있게 하신 일들, 그리고 무엇보다 베트남전장에서 5천명의 전사자대열에 단 한명의 소대원도 포함되지 않은 점. 비단 이러한 행운(?)이 나뿐이랴 마는 얼마나 영광스런 자랑인가, 길 가다가도 그때의 일이 떠오르기만 하면 “감사합니다”를 연발하곤 한다. 오늘은 찦차를 타고 헌병 중대장의 인솔로 또 어디를 간다. 어디를 간다는 얘기도 없이 나를 데려 간다. 갑갑하다. 뽀얀 길바닥의 먼지를 일으키며 도착한 곳은 주월한국군사령부의 ‘보통군법회의’장이다. 좌우를 보니까 몇몇 병사들이 손이 묶인 채로 자리를 잡고 있다. 중대장의 안내로 나도 그 중에 자리를 잡는다. 잠시 후 재판관들이 배석하더니 곧바로 재판을 진행한다. 내 차례가 되었다. “..... 전소위 그날 ‘파홈타이’영감을 누가 죽였는가?” “예, 제가 죽였습니다.” 내 부하가 죽였으니까 당연히 내가 죽인 거라 생각했다. 실내가 다소 웅성거리는 분위기다. “전소위, 어떻게 죽였는가?” ...... 잠시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경황이 없었던 차에 워카 발로 한 두대 찼던 거 같습니다.” 재판장 B대령은 좌우에 배석한 참모들을 번갈아 보며 또 말한다. “의무 참모, 워카발로 한·두 대 차서 사람이 죽을 확률이 있는가?” ...... 의무참모가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다. 아!~파월직전 12사단 시절 3군단 내에서 장교들 야구시합 때 같은 팀에서 내가 서드베이서였고 내 뒤에 외야 수비를 받쳐 주었던 레프드필더였던 경기고출신 전병호 의무장교 소령(시합 때는 대위)이었다. 반가움 반, 창피함 반의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잠시 후 그는 약간의 고개를 숙인 듯 하는 모습으로 대답한다. “워카발로 백대를 차도 안 죽을 수가 있고 단 한대를 차서 죽을 수도 있습니다.” 재판장은 또 한 번 묻는다. “전소위, 전소위가 정말 찼는가?” 왜 같은 말을 되풀이 시키는가? 남자 일구이언은 싫다. 그때만 해도 남다른 부하사랑의 의협심으로 지내 온 나다. “예, 제가 찼습니다.” ...... 재판관들이 서로 말을 주고받고를 하더니 구형을 내린다. “피고, 전광섭소위. 특수폭행치사 징역 1년6개월” 재판이 끝나고 바깥을 나와서 곧장 한줄기 쏟아 부을 듯한 먹구름을 보며 긴 한숨을 쉬었다. 인솔 헌병중대장과 찦차로 가면서 핀잔을 받는다. “전소위 참 답답하오. 내가 안 죽였다하면 끝나고 사병 한 두 명을 귀국시키면 되는 것을...” 자기는 나를 아끼며 하는 말이지만 나와는 거리가 먼 얘기다. 또다시 헌병대 가설 유치장의 양철지붕에서 기관총 소리를 퍼 붓는다. 열 식히라고 스콜이 굵은 빗방울을 퍼 붓는다. ‘우르르 쾅’ 제법 긴 시간 쏟아진다. 아~정신이 혼미해 진다. 소대원들의 얼굴 몇이 떠오른다. 이상병· 박일병의 군화발. ‘파홈타이’의 신음. 이 모두가 긴 세월 후에는 값진 진주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또 든다. 비록 적이긴 하지만 '파홈타이' 늙은이는 목숨을 걸고 살기를 체념한 채 큰 소리를 지르며 자기 동료들을 피난케 한 귀한 희생을 감내했었고 그를 사망케 한 두 병사는 우리가 당할 수도 있는 역습을 잠재운 용감한 살인이었던 점을 져버릴 수 없다. 바로 직전까지 그들은 불빛신호를 주고받던 베트콩들이 아니었나. 이런 상황도 모른 채 하나의 사체를 두고 살인이라는 죄명으로 결론을 내버리는 군사재판의 편의성. 5.16 박정희 시절 그의 동기(만주 군관학교)였었다는 이소동 사단장은 맹호사단 보다 한해 늦게 파월 되었던 백마사단인데 왜 그렇게도 안전사고 등등의 비전투 손실이 많느냐고 상부로 부터 질책을 받던 터라 그는 신상필벌주의로 전투병력을 다스림이 과연 군의 사기를 얼마나 떨어뜨렸는가를 곰곰히 곱씹어 봄직하다. 그날 군법무관 ‘조××’중위는 철저하게 사단장의 방침에 따르는 사람 같았다. 전투병의 ABC를 전연 무시한-각박한 상황에 대한 정상참작을 져버린-밥맛없는 법무관이라고 두고두고 원망스러운 젊은이라고 낙인찍어 버린 적이 있었다. 나는 이제 땀의 결정체로 반짝이는 소위계급장을 떼버려야 하는지. 다음에 맞이할 시간들을 맥 빠진 채로 기다릴 뿐이다. 이미 죽기를 각오하고 전장에 뛰어든 마당에 이까짓 한 목숨이 뭐 그렇게 귀중하냐! 인간의 생사화복은 그 분의 권한이라는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난 이 길로 어떻게 되나, 두·세평 남짓한 철장 속에서 군생활의 미래는 도무지 보이지 않고 살아서 돌아간들 그 많은 지인들을 뭔 낯으로 뵙나? 청춘은 한 많은 인생으로 종을 치는구나. 무엇보다 유소년시절부터 가난을 딛고 땀 흘리며 여기까지 온 데 대한 인생 1막의 종착역이 비참한 영창살이로 끝맺음 한다는 것은 너무 어처구니없는 내 자신이 아닌가. 그때는 하나님을 전연 알지 못했던 유교풍 집안의 자식이기에 그저 불평·불만만을 일삼아 오던 자신이었음을 솔직히 고백했었다. 나를 만나던 친구 중에는 반가운 기색이 전연 없는 나에게 “너 얼굴에 수심이 가득해, 인상 좀 펴고 다녀라.” 라고 핀잔 아닌 핀잔을 주곤 했다. 그때부터 한 동안 미소를 잃어버리고 살아 온 것을 실토하지 않을 수 없다. 여자 친구가 와도 만나기 싫고, 바닷바람도 늘 혼자서 쐬고. 주변에는 나의 기둥이 될 만한 사람이 없다. 아니 찾아보려는 의욕을 몽땅 상실한 채, 살아 갈 고민을 하질 않고 방황의 세월이 흐르고 있다. 지나고 보니까 굉장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던 게 아닌가싶다. 1970년대만 해도 우울증이란 병명은 생소한 단어였다. 전쟁을 치르고 난 병사들은 그때의 공포 후유증을 완전히 벗어나기에는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겠나 싶다.(다음에 이어집니다) [국가유공자·베트남참전 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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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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