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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는 힘 날 때까지 부를 것”… 나훈아 은퇴 선언에 ‘라이벌’ 남진 반응
    “저는 힘이 날 때까지, 내가 부를 수 있을 때까지 불러보고 싶습니다.” [이코노미서울=연예팀] 가수 남진이 1970년대 라이벌 구도를 이뤘던 나훈아의 은퇴 선언을 접하고 보인 반응이다. 남진은 나훈아의 은퇴가 아쉽다면서도 할 수 있을 때까지 가수 활동을 이어가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남진은 30일 공개된 MBN 인터뷰에서 “(나훈아가) 빨리 은퇴한다는 얘기를 들었더니 좀 아쉽기도 하다”며 “저는 힘이 날 때까지, 내가 부를 수 있을 때까지 불러보고 싶다”고 했다. 남진은 지난 4일 배우 김승우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에 출연했을 때도 인터뷰 중 나훈아의 은퇴를 언급하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남진은 “난 믿어지지 않는다. 한창 노래할 나이인데 내가 그 나이면 좋겠다”며 “(은퇴 소식을) 매스컴에서 봤는데 ‘뭐가 잘못됐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믿어지지 않는다. 개인적인 사정이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이라고 했다. 이 방송에서 남진은 나훈아와 라이벌 구도를 이뤘던 1970년대를 추억하기도 했다. 실제로 당시 두 사람의 라이벌전은 한국 가요사에 다시 없을 명장면 중 하나로 꼽힌다. 특히 목포 출신의 남진과 부산 출신의 나훈아는 각각 전라도와 경상도를 대표하며 음악 팬들을 모았다. 이와 관련해 남진은 “나훈아씨와 라이벌로 그 시대를 이뤘다는 게 큰 힘이 됐다”며 “이런 명콤비가 또 없다”고 했다. 이어 “우리 같은 양자구도는 없었다”며 “노래 스타일과 분위기도 다르지, 또 출신 지역도 완전히 달라서 더 뜨거웠다”고 했다. ‘개인적으로도 소통을 하는 편이냐’는 질문에는 “친구였으면 술도 먹고 했을텐데 나이 차이가 있다. 내 친구 제자였다”고 답했다. 남진은 “나훈아를 1968년도에 처음 봤다. 서울에서 친구를 만났는데 그 친구가 음악 학원 차리고 제자 양성하고 있다면서 제자 하나를 부르더라. 근데 그 사람이 나훈아였다”고 회상했다. 앞서 나훈아는 지난 2월 가요계 은퇴를 시사한 데 이어, 지난 27일 인천 연수구 송도컨벤시아에서 열린 전국 투어 콘서트 첫 날 은퇴를 확정 지었다. 데뷔 58년만이었다. 이날 공연 초반부터 나훈아는 “우선 인천 공연은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말했고, 이후에도 여러 차례 ‘은퇴’의 말을 입에 담았다. 가수로는 은퇴하지만, 작곡가로는 활동하는 것 아니냐는 일부 추측에 대해서는 “혹시 누구에게 곡이라도 써주며 연예계에 기웃기웃 하지 않을까 싶겠지만, 전 (애초에) 후배 가수들도 잘 모르기에 누구에게 가사나 곡을 주지 않는다”며 “살짝 옆 눈으로도 연예계 쪽으로는 안 쳐다볼 거다”고 선을 그었다. 또 일각에서 제기한 ‘건강이상설’에 대해서는 “금년 2월 스물 다섯 가지 피검사를 했다. (너무 건강해) 의사 선생이 깜짝 놀랐다”고 반박했다. 공연 전 편지에 ‘은퇴’를 직접 안 쓴 것은 “싫어서 안 썼다”고 했다. “꼭 밀려가는 느낌이라서. 전 아직 더 할 수 있다. 그래서 (미리) 마이크를 내려놓는다”고 했다. 그는 “(유튜브에서) 어떤 점쟁이는 내년에 내가 죽는다, 아픈 게 보인다더라. 금년 2월달에 스물다섯 가지 검사를 했다. (너무 건강해) 의사 선생이 깜짝 놀랐다”며 자신의 건강검진표를 무대 위 전광판에 띄우기도 했다. 은퇴 후 “어떻게 살 것인지”는 이렇게 말해 긴 박수를 받았다. “안 가본 데 가볼기다. 안 묵어본 거 묵어불 끄다. 안 봐본 거 볼 끄다. 제 다리가 멀쩡할 때 저 하고 싶은 거 할 낍니다. 여러분, 하고 싶은 거 하고 사셔야 합니더. 쌔가 빠지게 벌은 돈 다 쓰고 죽어야 됩니더!” 신비주의를 고수해 온 그답지 않게 솔직한 사생활 언급도 이어졌다. 곡 ‘마이웨이’ 도중 “언론에서 제가 세 번 결혼했니, 네 번 했니 하는데. 농담 아니고 전 결혼식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며 가사의 ‘Oh No, Oh No’를 능청스레 이어 불러 객석 웃음보를 터트렸다. 그는 “걷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이 노래가 제 인생과 비슷하다”고 했다. 평론가 사이 의견이 분분했던 자신의 공식 프로필(1947년생, 1966년 데뷔)의 일부도 바로잡았다. 살이 비치는 핑크색 상의, 찢어진 청바지 등 총 15벌을 곡 사이사이 무대 위 가림막을 두고 갈아입었는데, 대부분 옷에 ‘1967년~2024년’이 새겨져 있었다. 곡 ‘고향역’ 땐 1967년 출발해 2024년 멈추는 기차 영상을 틀었다. 자신이 여기는 가수 출발점을 ‘1967′년으로 암시한 것. 나훈아는 공연 도중 역대 대통령 사진들과 함께 “11명 대통령이 바뀌고도 전 아직 노래 중”이라며 길었던 가수 생활을 돌아보기도 했다. 나훈아의 대표곡 ‘공’의 무대도 이날은 더 묵직했다. 그는 공연마다 이 노래 후렴구 ‘띠리~띠리띠리 띠리~’에 맞춰 만담처럼 속내를 터놓기로 유명하다. 이날도 “이 이야기는 꼭 하고 (노래를) 그만둬야겠다”며 공의 선율에 맞춰 “전 북쪽을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저긴 이상한 집단이지 나라가 아니다”라고 외쳤다. “북쪽 김정은이라는 돼지는 사람들이 굶어 죽거나 말거나 살이 쪄 가지고. 저거는 나라가 아니다. (김정은) 혼자 다 결정하니깐, 실컷 얘기하고 조약을 맺어도 혼자 싫다 하면 끝이다”라며 비판을 쏟아냈다. “이제 전쟁도 돈이 필요한 시대다. 이스라엘이 이란의 미사일을 막는 데 하루 1조를 써서 99%를 막았다고 한다. (북쪽에서) 치고 싶어도 칠 수 없을 만큼 강해져야 한다. 힘이 있어야 평화도 있다”는 그의 호소에 ‘옳소!’ ‘그렇지!’ 관객 호응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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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1
  • 배우 남일우 별세…김용림 남편상·남성진 부친상·김지영 시부상
    [이코노미서울=연예팀] 원로 배우 남일우가 향년 85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31일 소속사 매니지먼트 율에 측은 남일우가 이날 새벽 노환으로 별세했다고 전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질 예정이다. 현재 배우이자 아내 김용림과 아들 남성진, 며느리 김지영 등이 빈소를 준비 중이다. 발인과 장지 등은 장례 일정이 구체화되는 대로 정해질 전망이다. 고인은 지난 1938년 5월 태어나 1958년 KBS 성우극회 3기 성우로 발탁되면서 방송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배우로 전향했고 1964년 KBS 탤런트 공채 4기로 안방에 진출했다. 드라마 ‘순애’ ‘내 마음 별과 같이’ ‘이차돈’ ‘제2공화국’ ‘코리아게이트’ ‘용의 눈물’ ‘명성황후’ ‘야인시대’ 등 걸출한 작품들에 출연하면서 많은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다. 지난 1965년 동료 배우 김용림과 결혼했고, 슬하에 1남 1녀를 뒀다. 아들 남성진 역시 남일우의 뒤를 이어 배우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으며, 지난 2004년에는 동료 배우 김지영과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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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01
  • 오스카상 진행자 “감옥 갈때 지나지 않았나”…트럼프 조롱 논란
    토크쇼 진행자 키멀, 자타 공인 리버럴 인사 [이코노미서울=연예팀] 10일 치러진 아카데미(오스카상) 시상식에서 방송인 지미 키멀(Jimmy Kimmel)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향해 “감옥 갈 때가 지나지 않았냐”고 공개 조롱한 것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조선일보 보도에 의하면, 이 영화제에서 정치인을 향한 저격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키멀 스스로가 “제작진 만류에도 내가 한 것”이라 밝혔기 때문이다. 키멀 발언이 ‘사이다’라는 찬성 측과 영화제에서까지 꼭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야하냐는 반대 측 의견이 엇갈리며 오스카상을 놓고 미국 사회의 진보·보수가 또 다시 갈라진 모습이다. “연예인들의 ‘개념 코스프레’ 속 오스카상이 엉망진창이 됐다”는 얘기도 나왔다. 인기 토크쇼 진행자인 키멀은 과거 민주당 의원들의 펀드레이징(선거자금 모금) 행사에 참여해왔고, 트럼프 정부에선 대통령과 측근들을 줄곧 비판해온 인사다. 과거 “토크쇼 호스트가 진보적(liberal)인 이유는 이 일이 지능을 요구하기 때문”이라며 자신에 대한 편파 논란을 받아치기도 했다. 이런 키멀의 정치 패러디 영상을 민주당 지지자들은 ‘사이다’라며 돌려봤다. 키멀은 올해 통산 네 번째로 시상식 진행을 맡았는데, 이날도 공화당 정치인을 저격하는 것으로 포문을 열었다. 영화 ‘가여운 것들’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에마 스톤을 소개하며 “에마는 (조 바이든 대통령의) 국정 연설에 반박 연설을 한 여성처럼 어린아이 뇌를 가진 성인 여성을 연기했다”고 했다. 이는 지난 7일 바이든 국정연설에 대한 반박 연설에 나섰다가 어색한 톤과 과장된 감정의 연설로 비판 받은 공화당 최연소 상원의원인 케이티 브릿을 지적한 것이다. 키멀의 이같은 발언에 TV를 보고 있던 트럼프가 발끈했다.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글을 올려 “역대 오스카에서 키멀보다 최악인 진행자가 있었나” “그의 오프닝은 결코 될 수 없는 무언가 되려고 노력하는 평균 이하 사람의 멘트였다” “키멀을 치우라” “오늘 밤 정말 나쁜 쇼였고, 연결이 안 되고, 지루하고, 아주 불공정하다”고 했다. 여기에 키멀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시상식 말미에 주머니 속에서 휴대폰을 꺼내더니 트럼프가 쓴 글을 낭독했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통령님! 아직 깨어 있다니 놀랍네요. 감옥에 갈 시간이 지나지 않았나요?” 형사 기소돼 여러 재판을 받고 있는 트럼프 상태를 꼬집은 것이다. 키멀은 “(제작진이) ‘아니, 아니 그것을 읽지 말라’고 했고, 나는 ‘트럼프 트윗을 읽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작진 만류에도 강행했다는 뜻이다. 키멀의 트럼프 저격에 객석에 앉아있던 영화 ‘바비’의 주연 배우 마고 로비 등 많은 할리우드 배우들이 폭소를 터뜨렸다. 하지만 안 그래도 대선을 앞두고 분위기가 달아오르고 있는 SNS는 곧바로 전쟁터가 돼 버렸다. “대단한 오스카, 미국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게 아니라 쪼개 놓고 있다” “그냥 솔직히 너무 재미가 없다” “공화당 사람들이 저랬으면 난리가 났을 것이다” “저런 사람이 이런 ‘쓰레기’ 같은 시상식으로부터 사람들이 등을 돌리게 만드는 것이다” 같은 부정적인 반응이 쏟아졌다. 트럼프 측근인 리처드 그레넬 전 독일대사는 “트럼프가 오스카의 마지막을 장식하게 해줘 고맙다”고 비꼰 반면, 반(反)트럼프 인사인 조지 콘웨이는 “엽기적인 행동을 문제 삼고 비웃는 게 트럼프를 다루는 방법”이라고 키멀을 두둔했다. 미국의 공식 석상에서 배우나 코미디언이 정치인을 조롱·풍자하는 ‘정치 패러디’를 하는 건 흔한 일이다. 백악관출입기자단(WHCA) 만찬에선 대통령이 온몸으로 자신에 대한 비판을 받아내고 개그맨까지 섭외해 ‘자학 개그’도 선보인다. 하지만 보수 유권자들을 중심으로 정치적 올바름(PC)나 이른바 ‘워크(Woke·인종, 성별, 사회적 불평등 문제에 깨어 있다는 의미)’에 대한 거부감이 커지면서 최근에는 이를 대하는 양상이 달라지고 있다. 2020년 영국 코미디언인 릭키 제바이스는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수상 소감을 통해 정치·사회 현안에 대해 말하는 일부 배우들을 향해 “당신들은 실제 세상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고 어떤 것도 강연할 위치에 있지 않다”며 “만약 수상 한다면 올라와 상을 받고, 에이전트와 신(神)에 감사드리고 꺼져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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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12
  • 정훈희 “미8군 데뷔 무대서 난생 첫 기립박수… 노래 인생 ‘꽃밭’ 열렸죠”
    [한미 동맹 70년, 번영을 위한 동맹] 정훈희 “미8군 경험이 날 키워” 가수 정훈희(72)의 노래 인생은 미군에서 듣고 배운 음악이 바탕이 됐다. 아버지(정근수), 작은아버지(정근도), 오빠(정희택)가 모두 미 8군 무대에서 음악 활동을 했다. 남편(김태화)도 미 8군에서 록밴드 리드 보컬로 활동했다. 미8군(Eighth United States Army)은 미 육군 야전군의 하나로 한국에 주둔한 주한 미군 지상군을 말한다. 다음은 조선일보 보도. 아버지는 1950년대 후반 부산에 주둔한 미군 부대(캠프 하이얼리아·Camp Hialeah)에서 피아노를 쳤다. 해방 이전 최대 음반사인 빅터 레코드 전속 가수였던 아버지는 어린 딸에게 늘 말했다. “이제는 미국 노래를 불러야 해. 더 큰 세상에서 놀아야 한다.” 한글을 깨칠 무렵 아버지는 딸에게 영어를 가르쳤다. “”대여섯 살 때쯤이었을까? 아버지가 ‘ㄱ’을 써주시면서 ‘이게 기역인데, 기역의 영어 발음은 ‘G’라고 쓴다. 알겠제?’ 이런 식으로 한글과 알파벳을 동시에 배웠어요.” 어린 정훈희도 미국 노래를 들으면 가슴이 뛰었다. AFKN(주한미군방송·American Forces Korean Network) 라디오 방송을 들으며 팝송을 익혔다. “AFKN 라디오에서 최신 미국 인기 가요 방송인 ‘아메리칸 톱 포티(American Top 40)’가 들리면 그렇게 마음이 설레는 거예요. 최신 팝송이 들리는 대로 우리말로 받아 적으며 따라 불렀어요. 아버지가 미군 부대 미국인들한테 원어 가사를 받아주시기도 했고요. 너무 재미있고 신기하니까, 영어로 말하고 쓰는 게 어렵다는 생각을 전혀 안 했어요.” 작은아버지는 미 8군에서 활약한 밴드 마스터였다. 1967년 고교 1년생인 16세 정훈희가 가수로 데뷔할 수 있었던 건 작은아버지 덕분이었다. “작은아버지는 서울 대형 나이트 클럽에서도 밴드 연주를 했어요. 그래서 제가 방학 때 서울 남대문 그랜드 나이트 클럽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었지요.” 어느 날 작곡가 이봉조가 클럽에 찾아왔다. 작은아버지 친구인 이봉조는 미 8군 무대서 색소폰을 불며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자리에 앉아 있던 이봉조는 정훈희 노래가 끝나자 무대로 달려와 팝송을 불러보라고 했다.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주제가 ‘문 리버(Moon River)’, 가수 패티 페이지 노래 ‘아이 웬트 투 유어 웨딩(I Went to Your Wedding·당신의 결혼식에 갔었어요)’을 불렀어요.” 노래를 듣고 이봉조가 말했다. “쬐깐한 게 참 노래 잘하네. 영어 발음도 좋고. 니 노래 어디서 배웠노?” 미 8군에서 음악하는 집안의 딸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미군 부대서 군 생활을 한 큰오빠(정희택)는 1970년대 록밴드 히식스의 기타리스트 겸 보컬로 활약했다. 이봉조가 작곡한 노래 ‘안개’로 가요계에 데뷔한 정훈희도 미군 무대에 여러 차례 섰다. 정작 첫 미군 무대에 선 때는 시기가 좀 늦었다. 데뷔 후 10년쯤 지난 1977년 군산 미 공군 부대 특설 무대에 초청받았다. 1960년대를 풍미한 백인 듀엣 라이처스 브러더스의 노래 ‘언체인드 멜로디(Unchained Melody)’를 불렀다. “Oh my love, my darling (오 내 사랑, 그대여) I’ve hungered for your touch(당신의 손길이 너무도 그리워요) A long lonely time(길고도 외로운 시간들).” 노래가 끝났는데 일순 침묵이 흘렀다. 이런 무반응은 처음이었다. 혹시 실수라도 한 건 아닐까. 마이크를 잡은 두 손에 땀이 흥건해졌다. “제가 무대에서 긴장 같은 건 잘 안 하거든요. 세계 가요제 무대에도 섰고, 서울 대형 나이트 클럽에서 미군들 앞에서도 노래 많이 했거든. 차라리 야유가 터지면 다행인데 그조차도 없이 조용하니까, 내가 일냈구나 생각했지요.” 그 순간이었다. 조용하던 관객들이 노래가 완전히 끝났다는 걸 확인했는지 모두 일어나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이튿날 미 8군 신문에 정훈희 기사가 크게 실렸다. 미 8군 무대에서 만났던 선배들도 기억한다. “미 8군 쇼 무대에 섰던 가수 오빠들이나 언니들을 보면 정말 치열하게 살았어요. 요즘 TV에서 아이돌 데뷔 오디션 하지요? 그때도 오디션이 있어서 A, B, C 같은 등급을 매겼어요. 돌아가신 현미 언니를 비롯해, (윤)복희 언니, (윤)항기 오빠, (장)미화 언니 같은 사람들은 정말 인기 스타였어요.” [연예팀ieconomyseou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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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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