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1-21(목)
 


[이코노미서울=정치팀] 여야가 격한 대립을 반복해 온 21대 국회는 28일 마지막 본회의까지 파행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이 직회부한 양곡관리법 등 법안 3건에 대해 김진표 국회의장이 오후 6시 22분쯤 “여야 및 정부 간 이견이 커서 오늘 본회의에서 처리하지 않겠다”고 말하자, 야당에선 고성과 야유가 쏟아졌다. 3선의 한 의원은 책상을 ‘쿵’ 내리쳤다. 반면 본회의장 오른편은 텅텅 비어 있었다. 국민의힘이 민주유공자법 등에 반발하며 퇴장해서다. 반은 떠나고 반은 고함치는 어수선함 속에 김 의장은 “오늘 회의는 이것으로 마친다. 산회를 선포한다”고 말했다. 그의 국회 마지막 공식 발언이었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이날 국회의 마지막 일정을 끝낸 뒤 한 중앙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동안의 심경을 털어놨다.

 

마지막 본회의까지 여야 양쪽에서 비난이 쏟아진 데 것에 대해서 김 의장은 “가운데에서 조율자 역할을 하다 보면 욕을 먹을 수밖에 없다”며 “욕먹는 게 두려워 누군가를 편든다면 그게 진짜 욕먹을 짓”이라고 했다.

 

그는 “국회의장으로서 가장 자괴감이 들었던 일은 대통령이 거부권을 10번이나 행사하는 상황을 만든 것”이라고도 했다. 김 의장은 “여야가 각자 10개씩 주장했으면 조금씩 양보해서 합의되는 5~6개를 먼저 통과시키고, 그 다음에 나머지를 협의하는 ‘스텝 바이 스텝(step by step)’으로 가는 게 맞다”며 “그러나 현재 정치권이 ‘올 오어 낫싱(all or nothing)’ 정치를 하니 쟁점 사안 대부분이 정쟁을 거듭하다가 일방적인 실력 행사와 거부권 행사로 종결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의장은 예상보다 길고 격렬했던 본회의였다는 물음에 “나도 국회의장으로서 마지막 본회의였다. 그래서 어제오늘도 양당 원내대표를 불러 합의된 것만 올리자고 설득했다. 그런데 합의가 안됐다. 여당은 모든 게 다 안 된다는 거고, 야당은 다 하자는 거다. 그래서 7개 법안 상임위 심의 과정을 내가 따로 다 살펴봤고, 그중에 여야 이의가 없는 법안 4건만 처리했다.”고 밝혔다.

대통령이 또다시 거부권을 행사하기로 한 것에 대해서는 “돌이켜보면 21대 국회에선 쟁점 사안 대부분이 정쟁을 거듭하다 일방적인 실력행사와 거부권 행사로 종결됐다. 이런 ‘올 오어 나싱(all or nothing)’ 정치는 허공에 헛주먹질하는 후진적 정치다. 힘으로 밀어붙인 야당도 성과가 없다. 여당과 대통령은 독선 이미지를 얻었다.”고 피력했다.


22대 국회의 예상에 대해 “여야 원내대표가 중요하다. 여당 원내대표는 대통령 생각이 잘못됐다면 그걸 고치려는 의지와 정치력이 있어야 한다. 지금 용산 심기 살피느라 아무런 협상이 안 되는 것 아닌가. 국민은 총선에서 그 점을 경고한 거다. 야당 원내대표는 당내 민주주의를 활성화해야 한다. 강성 팬덤 눈치만 보면 어떡하나. 옳은 일이면 자기 의사를 관철해야지, 그렇지 않으려면 뭣 하러 원내대표를 맡나.” 


“여야 가릴 것 없이 지금은 팬덤 정치의 노예가 돼 있다. 본회의장이든 상임위 회의장이든 팬덤을 위한 선전장으로 쓰고 있다. 국회의원은 나를 뽑은 사람의 95%가 당적이 없는 사람이라는 걸 잊어선 안 된다. 그럼 거기에 맞춰야지, 왜 패거리 정치를 하나. 정치인이 깡패 집단인가? ”


김 의장은 민주당이 소수 야당이던 2011~2012년 원내대표를 지냈다. 김 의장은 “그때는 소수 야당의 원내대표였지만, 내가 소신껏 의원총회에서 설득하고 끌고 갔다”며 “그래야 여당에서 보더라도 ‘저 사람은 믿을 수 있다’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그의 협상 파트너는 황우여 새누리당 원내대표였다. 현재의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다. 두 사람이 임기 말 의기투합해 통과시킨 게 국회선진화법이다.

 

당시 국회선진화법으로 도입된 패스트트랙·직회부가 외려 다수당의 입법 독주 수단이 됐다는 평가에 대해 “국회선진화법은 동물국회에 종지부를 찍자는 취지에서 만들었다. 여야가 대화와 타협을 통해 문제를 풀어나가자는 취지였다. 그런데 극단적인 여소야대 상황에서 국회선진화법이 다수당이 독주하는 도구로 활용됐다는 지적에 책임감을 느낀다. 개헌과 선거법 개정을 통해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자리 잡을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으면 한다.”

 

11억원을 들여 공론조사까지 했지만, 선거법 개정도 불발됐다.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여야 모두 이길 수 있는 제도만 고집하니, 선거제 협상이 지연됐다. 선수가 직접 선거의 룰을 개정하는 비정상적 상황을 개선해야 한다. 의원이 아닌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선거제 개편을 주도해야 한다.”

 

김 의장은 “내 앞의 5명의 국회의장이 노력했지만 다 실패했고, 나 역시 2년 동안 노력했지만 안 됐다. 최근에 내린 결론은 권력구조 개편을 중심으로 개헌하는 건 국민의 70% 동의를 받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 모두가 공감하는 저출생 문제 하나만 갖고 개헌을 하면 어떨까 생각한다. 일단 헌법을 일부라도 고쳐보고, 나머지는 3년 뒤에 고치는 식으로 하자는 게 내 생각이다.”


김진표 의장은 22대 국회 임기가 시작되는 30일이면 50여년 만에 민간인이 된다. 그는 1973년 행시에 합격한 뒤 30년 동안 경제 부처 공무원이었고, 2004년 정계에 입문한 뒤 20년 간 국회의원을 지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자 고위 경제관료였다는 이력 탓에 ‘민주당 내 보수인사’로 불리기도 했다. 특히 이명박 정부 당시 한·미 FTA 비준동의안 당내 논의 과정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서명한 것을 야당이 됐다고 파괴하는 게 말이 되냐. 그럴 바에는 차라리 당을 없애자”고 외친 건 유명한 일화다.

 

“민주당도 궁극적인 목적은 집권이고, 집권하려면 민생 경제를 발전시키고 경제 활력을 유지해야 한다. 저는 김대중 대통령과 외환 위기를 극복하는 일을 한 이후로 늘 민주당이 부족한 경제 정책을 세우고 집행하는 역할을 제가 보충해드린다는 생각으로 일해 왔다. 정치라는 건 매일 선택하는 직업인데, 이걸 유불리에 따라 선택하면 실수투성이가 된다. 늘 그 시점에서 옳고 그름으로 선택했고, 그래야만 나중에라도 후회가 없었다.”

 

김 의장은 퇴임 후 계획에 대해 “혁신연구소를 열 계획이다. 정치 일선 플레이어의 역할은 끝난다. 축적된 경험을 살려 후배 정치인이나 후배 관료가 실수하지 않고 일할 수 있도록 서포트를 하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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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표 의장 "정치인이 깡패집단인가…팬덤 사로잡혀 패거리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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