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곡된 부분 한 두가지가 아니다" 사안별 반박
美검찰 기소 후 변호사 통해 조선일보에 첫 입장 밝혀
[이코노미서울=정치팀] “전문가로서의 독립성과 애국심에 의문이 제기된 데 대해 큰 충격을 받고 분노하고 있습니다.”
미국 정부에 신고하지 않고 한국 정부를 대리해 일했다는 혐의로 미 연방 검찰에 의해 기소된 한반도 전문가 수미 테리(53·한국명 김수미)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 측이 본지에 이 같은 입장을 밝히고 강력한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테리의 변호인 리 월러스키는 19~20일 진행된 전화 및 서면 인터뷰에서 “테리는 (한반도 문제 등에 대해 한국에서 어떤 정부가 들어서든) 항상 독립적인 의견을 내세웠고 정책 제안 활동도 미국의 ‘최선의 이익’에 따라 이뤄졌다”고 했다. 월러스키는 “테리는 (기소 직후) 공개 대응할 수도 있었지만, 변호사 조언에 따라 법정에서 대응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판단을 내렸다”며 “테리는 주변에 검찰이 제기한 수많은 ‘허위 주장’에 공식 대응할 수 있을 때까지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달라고 요청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테리 측은 검찰 기소에 대해 “왜곡된 부분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라며 사안별로 반박했다. 테리 측이 이번 기소에 대해 구체적인 입장을 밝힌 건 이번이 처음이다.
-테리는 자신의 기소에 대해 어떤 입장인가.
“그녀는 미 당국의 각종 ‘허위 주장’들을 접한 뒤 분노하고 있다. 1938년 독일 나치의 선전·선동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 중국·이란·러시아·북한 같은 적성 국가가 아닌 한국과 같은 가까운 ‘민주 동맹국’을 상대로 적용되는 걸 보고 충격도 받았다.”
-검찰은 테리가 한국 정부에 수년간 미국의 ‘비공개 정보’를 넘겼다고 주장하고 있다.
“테리가 중앙정보국(CIA)를 그만 둔 지가 10년이 넘는다. 2011년 이후 기밀에 접근 가능한 ‘보안 허가(security clearance)’를 받은 적도 없다. 미국과 관련된 기밀 정보를 한국 정부에 넘기거나 미국 정책에 영향을 미치려한 적은 단 한 한번도 없다.”
그러나 테리는 2022년 6월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의 비공개 회의에서 나온 비공개 메모를 한국 정부에 전달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당시 워싱턴 DC 국무부 청사에서 약 1시간 동안 진행된 소규모 회의엔 블링컨 장관, 고위 국무부 관료들과 함께 테리를 포함한 다섯 명의 한반도 전문가가 참석했다. 당시 회의는 언론 보도가 불가능한 ‘오프더레코드’를 전제로 이뤄졌지만, 테리는 회의가 끝난 직후 수기(手記)로 작성한 회의 내용을 한국 정부에 넘겼다. 검찰은 “국무부 회의가 끝난 직후 국정원 요원이 대사관 번호판이 달린 차량에 테리를 태운 뒤 미 국무장관을 만나고 테리가 가져온 두 페이지 메모를 촬영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공소장에 주요 증거로 테리가 작성했다는 메모 사진을 포함시켰는데, 메모의 세부 내용은 볼 수 없도록 편집 처리했다.
-테리가 국무장관의 발언 등 기밀을 국정원에 유출한 것 아닌가.
“당시 회의는 한반도 전문가들이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자리였지 ‘기밀 회의’가 아니었다. 블링컨 장관이나 국무부 고위직들은 회의에서 의미있는 발언을 하지 않았고, 전문가들 의견을 듣다가 끝났다고 한다. 검찰이 공소장에 포함시킨 ‘문제의 노트’는 테리가 회의에서 자신이 발언할 내용을 미리 손으로 적어간 것이었다. 검찰이 왜 기밀이 포함돼 있지도 않은 노트를 ‘편집 처리’해 마치 비밀 정보가 포함된 것처럼 인상을 주는 지 알 수가 없다.”
-테리가 문재인 정부 당시인 2019년 서훈 국정원장이 워싱턴을 방문했을 당시 미 정부 고위 관계자들과의 만남을 주선한 데 대해선 어떤 입장인가.
“한국 국정원장을 비롯한 한국의 고위 관리들은 워싱턴의 싱크탱크 회의에 정기적으로 참석한다. 그런 회의를 주선하는 건 미국의 유명 연구소 소속 간부로서는 일상적인 업무다. 이를 ‘비밀 요원’의 행동이라고 보는 건 실상을 잘 모르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정보기관 모사드 국장이 미국에 오면 미 당국자들을 만나고 간다. 그럼 그 회의를 주선한 인사도 기소해야 하나? 테리는 국정원을 포함한 한국 정부 관리들과의 관계에 대해 항상 매우 개방적이었다. 스파이들은 비밀리에 접선한다. 한미 당국자들간 만남을 싱크탱크 건물 안에서 공개적으로 주선하고 참석하지 않는다.”
조선일보는 월러스키 외에도 테리와 가까운 인사(人事)들을 통해 테리의 입장을 들을 수 있었다고 했다. 이를 통해 미 검찰 주장과 테리의 반박 입장을 문답식으로 재구성했다.
-왜 한국 정보 당국과 교류를 하면서도 미 정부에 대리인으로 등록하지 않았나. 외국대리인등록법(FARA)은 외국 정부·정당·기업의 이익을 대변하거나 홍보하는 사람은 미 법무부에 등록하고 그 활동을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
“테리가 한국의 대리인으로 활동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테리는 직업이 연구원이자 기고자·방송인이다.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윌슨센터, 외교협회(CFR) 등 유명 연구소에서 일하면서 MSNBC 등 유명 방송의 고정 출연자(contributor)로도 일해왔다. 한반도 문제에 대해 의견을 밝히기 위해 한국 정부 관계자들과 가깝게 지낸 건 맞는다. 테리도 당연히 한국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취재할 필요가 있는 것 아닌가. 그러나 한국 정부에 비밀을 건넨다거나 한국 정부의 ‘사주’에 따라 소신까지 바꿔가면서 글을 쓰거나 발언한 적은 없다.”
-검찰은 한국 정부가 테리의 기고문 등을 통해 미국의 외교 정책에 영향을 미치려고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테리는 북한 문제나 한일 관계 등 한반도 사안에 대해 항상 일관적이었다. 전문가로서의 소신에 따라 일해왔다. 한국에서 특정 정부가 들어섰다고 해서 이들의 ‘사주’에 따라 원래 의견을 바꾸지 않았다는 뜻이다. 공개된 테리의 글이나 발언만 봐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의 윤석열 현 행정부 및 조 바이든 미 행정부와 외교·안보 정책 성향이 주로 일치하는 반면, 이전의 문재인 정부 정책엔 동조하지 않았다. 뉴욕타임스, AP 기고문이나 유명 연구소 행사 등에서 수차례 문 정부의 ‘종전(終戰) 선언’ 추진이나 무리한 대북 협상 등에 줄곧 반대 입장을 밝혀왔다. 또 한미일, 한일간 협력 강화가 필요하다고 해왔다.”
-국정원은 테리에게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 핸드백과 돌체앤가바나 코트 등을 건넸다. 검찰은 이게 ‘정보 제공’ 등의 대가라고 보고 있다.
“알고 지냈던 국정원 요원이 선물을 주고 싶다고 여러 번 이야기를 했고 테리가 이를 받은 건 사실이다. 그녀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사인(私人)이다. 분명한 건 이걸 대가로 테리가 한국 정부나 국정원을 위해 기밀을 건네거나 미국 정부의 정책에 영향을 주기 위해 은밀한 활동을 한 적도 없다. 테리는 연구소, 컨설팅회사, 방송사 등으로부터 충분한 고정 수입을 얻고 있다. 애초에 국정원으로부터 금품을 받고 일할 인센티브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국정원은 주미한국대사관 명의로 테리가 근무하던 싱크탱크(윌슨센터)에 대한 연구자금 3만7000달러 등을 기부하기도 했다.
“테리는 이 연구원의 한국 담당 국장으로 일했었다. 국장으로서 ‘펀딩(자금 조달)’ 활동은 필수다. 테리는 정부 다른 부처에서도 비용을 받아 한국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한국 관련 학술 행사 등을 열었다. 당연한 공식적인 일이다.”
-미 언론들은 테리를 ‘스파이(spy)’로 낙인찍고 있다. 최근 뉴욕포스트는 그녀의 집 내부나 사생활까지 촬영·공개했다.
“정말 억울해한다. 미 당국의 일방적 주장을 받아적어 마치 테리가 미국을 배반한 사람처럼 묘사하고 있다. 하루에도 미국·한국 등 전세계 기자들들이 수백통씩 전화를 걸어오고 있다. 그럼에도 테리는 지금은 침묵하겠다는 입장이다. 결국 진실은 밝혀지리라고 굳게 믿고 있다.”
-한국의 여야(與野)가 이번 사건을 두고 서로를 비판하면서 정쟁으로 번지고 있다.
“그녀도 기사를 봤다고 한다. 정말 참담한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번 문제는 특정 진영에 국한 된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