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30(목)
 


2헬기로 구출.jpg
일러스트/전광섭

 

 

☞ 어느 날 데스크로 날아든 한통의 편지는 기자의 마음을 혼동케 하였다. 지금은 아련한 추억속의 전쟁이었던 월남전 내용이었다. 이 시대에 과연 그때의 베트남전쟁이 젊은 독자들에게 어필이 될까를 잠간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이내 머리를 내저었다. 노병의 편지는 ‘살아서 돌아온 자신의 몸도 무엇보다 소중하지만 파월장병에 대한 보상대책을 전·현정부에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는 것’이다. 그는 ‘국민납세에 의한 국가재정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대 전제하에 이역만리서 젊은 날 목숨을 담보로 전쟁터를 누비며 국가에 봉사한 파월공로에 대한 기억을 (국가가)지우는 같아, 이 시대를 사는 젊은이들에게 ‘헬조선’을 부르짖기 전에 파월퇴역장병들의 현주소와 국가안보에 대한 경각심 차원에서 이 글을 보낸다고 전한다. 처음에는 ‘어느 퇴역장교의 서신’으로 출발하였으나 전선에 참가했던 모든 피·아들이 진주알처럼 소중했다는 의미로

‘홈바산의 사투’를 ‘진주알의 숨바꼭질’로 제목을 변경하여 연재한다[편집자 주]

 

3)진주알들의 숨바꼭질

사리마다(팬티) 동무들과 저녁 늦도록 술래잡기로 땀범벅이 돼도 밥 때가 되면 엄마가 부르러 오신다. “복아~빨리 와서 씻고 밥 먹어야지~” 고교 때 까지 내 이름이 광복이다.

수철이 총 맞는 날 밤. 꼬빡 뜬 눈으로 날을 새게 되는 이곳‘ Mt. Homba홈바산’의 술래잡기는 끝날 줄 모른다. 아니 끝날 수가 없는 실전게임이다. 마구 쏟는 피를 보고도 혼비백산 정신을 차리기에는 적과의 첫 접전인지라 혼란 할 수밖에 없다. 날 보자말자 수철은 내 다리를 움켜 안으며 엉엉 울기 시작한다.

“소대장님 저는 살아야 됩니다, 꼭 살아야 됩니다!”

병사들이 각기 차고 있는 압박붕대로 두 팔과 두 다리를 감기 시작한다. 지혈은 되었지 싶은데 워낙 흘린 피가 많아서 걱정이다. 제각각 산개해서 야간 매복으로 들어갔다.

그 와중에 불과 오·육 개월 전의 양평 훈련 때가 떠오른다.

검정무명 치마저고리에 애를 등에 업고 훈련장에 면회 왔던 그의 부인의 모습이다. 수철은 3대 독자로 일찍 결혼을 해서 딸을 하나 두었던 터라, 자기는 꼭 살아야 된다고 울부짖고 있는 거다. 그때 파월 창설부대인 백마사단은 경기도 양평에서 특수훈련 중이었다.

병사들은 애 하나 더 낳고 월남가자고 텐트를 쳐 주고 왁자지껄 하던 모습이 순간 떠올랐었다.

새벽 먼동이 트기 전에 위 하늘이 보이도록 동그랗게 잡목을 쳐내고 헬기의 밧줄을 기다리는 중이다. 그 깊은 계곡까지 날아 와 준 흑인과 백인의 두 미군조종사가 그렇게도 고마울 수가 없었다. 하늘서 내려다보면 한낱 담배연기 같은 조그마한 백색연막탄을 찾아 이렇게 날아 와 준 거다. 아마 ‘나트랑 102 후송병원’으로 갔을 거란 상념에 잠시 눈을 감았다. 월남 정글 속의 첫 희생자였던 그가 소대의 첨병으로서 방패의 역할이 되었던 눈물겨운 사건인 셈이다.

“이 일병 꼭 살아다오!”

3년 전에 극적 상봉했던 그는 바위에서 튕겨 나왔던 파편 스물다섯 개를 수술해 내고 아직도 오른쪽 이마에는 손대지 못하고 파편을 담은 채 였다.

충남 금산에서 인삼농장을 하며 6남매를 시집장가 보낸 ‘장한 어버이상’으로 밀가루 30포를 받았다고 했다. 오래전 이산가족상봉이 이렇게 감격했었을까!

오늘도 내일도 흠바산의 술래잡기 게임은 계속된다. 그들은 익숙한 지형에 반들반들한 오솔길을 이용해 민첩하게 달아나곤 했다.

우린 가파른 바위계곡을 만나기도 하고 때로는 하늘이 보이지 않는 울창한 가시덤불에 갇히기도 한다.

건기 때는 나무가지에 매달렸다가 우수수 낙하해서 팔뚝에 달라붙는 거머리 떼를 경험하기도 했다.

베트콩은 달아나지만 이보다 더한 더위도 독충도 가시덤불도 모두가 저들 편이다. 전진 전진 하다가 땅거미가 지면 병사들은 변함없이 야간잠복에 몸을 낮춘다. 풀벌레들의 합창은 바로 자장가로 변한 양,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금새 코고는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졸음을 이기는 장사 없다고 거의가 녹아 떨이지기가 일쑤지만 2명 1개조의 고참병사는 남다른 불침번이 되고 만다. 마치 형님 품에 기대자는 동생 같은 모습이다.

아~ 이 지겨운 술래잡기의 끝이 어디란 말인가.

대략 일주일 지나면 헬기에서 내려주는 C레이션을 보급 받는다. 그리고 또 주간행군이 시작되고...

[전광섭·국가유공자·베트남참전 장교]-다음주에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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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전광섭의 ‘진주알들의 숨바꼭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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