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준호랑 (이)영준이가 앞으로 최소 3골은 더 넣어줘야지.”
2일(한국 시각) FIFA(국제축구연맹) U-20(20세 이하) 월드컵 16강전이 열린 아르헨티나 산티아고델에스테로 우니코 마드레 데 시우다데스 경기장. 8강 진출을 이뤄낸 김은중(44) 감독은 배준호(20·대전)와 이영준(20·김천상무)을 지켜보다 “둘을 붙여놓은 데는 이유가 있다. 둘이 합쳐 최소 6골을 넣겠다고 약속했었다”고 웃었다. 이번 대회 기간 둘은 같은 방을 쓰고 있다. 이 ‘특급 룸메이트’ 연속 골에 수비수 최석현(20·단국대)이 추가 골을 터뜨리면서 한국은 에콰도르를 3대2로 제압하고 8강에 합류했다. 일본·이라크는 조별 리그 탈락, 우즈베키스탄은 16강에서 이스라엘에 일격을 당해 이제 아시아권에선 한국만 남았다.
한국이 U-20 월드컵에서 8강 이상 성적을 거둔 건 1983년(4위)과 1991년(8강·남북 단일팀), 2009년(8강), 2013년(8강), 2019년(준우승)에 이어 이번이 여섯 번째다. 8강 상대는 5일 오전 2시 30분 나이지리아다. 나이지리아는 전날 우승을 겨냥하던 개최국 아르헨티나를 2대0으로 누르고 올라왔다.
해결사는 배준호(1골 1도움)였다. 에이스 등번호(10번)를 달고 나온 그는 전반 11분 드리블로 상대 페널티박스 왼쪽 앞까지 전진한 뒤 잠깐 멈춰 오른발로 상대 골문 앞쪽에 있던 이영준에게 크로스를 올렸다. 이영준은 이 공을 가슴으로 절묘하게 트래핑한 뒤 바로 오른발 발리 슈팅을 강하게 날렸는데 그대로 골망을 갈랐다. 이영준으로선 지난달 23일 조별리그 프랑스전(헤더 골)에 이은 2호골. 이영준은 “준호에게 ‘내가 뒷공간으로 돌아 뛸 때 크로스를 달라’고 사전에 말했는데 약속한 플레이가 잘 맞아떨어져 기쁘다”고 말했다.
그 다음은 배준호가 직접 해결했다. 전반 19분 오른쪽 풀백 박창우(20·전북) 패스를 받아 페널티박스 안에서 슛을 차는 척하면서 공을 반대로 꺾어 수비수 1명과 골키퍼까지 속이고 오른발로 차 넣었다. 개인기가 빛나던 순간이었다. 이후엔 쫓고 쫓기는 양상이 이어졌다. 전반 36분 박창우(20·전북 현대)가 페널티박스 왼쪽 끝에서 상대 선수 팔을 스치듯 잡았는데 이 선수가 넘어졌고 심판이 이걸 페널티킥을 불었다. 선수들이 항의하고 VAR(비디오판독)까지 했지만 소용 없었다. 2-1.
하지만 후반 3분 주장 이승원(20·강원)이 날카롭게 쏘아올린 코너킥을 최석현이 머리로 받아넣어 3-1. 이승원은 이번 대회 네 번째 공격포인트(1골 3도움), 최석현은 조별 리그 2차전 온두라스전 후반 퇴장(경고 누적)을 만회하는 ‘참회골’이었다. 최석현은 “자책하는 마음에 괴로웠지만 동료들이 다독여줘서 빨리 떨쳐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에콰도르는 후반 39분 문전에서 혼선 중 1골을 만회, 3-2까지 추격했지만 육탄 방어를 앞세운 한국 골문을 더이상 뚫지 못했다.
대전에서 뛰는 배준호는 K리그 대표 영건(Young Gun)이자 김은중호 테크니션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근육 부상으로 조별 리그 1차전에 결장하는 등 이렇다 할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김 감독은 그에게 ‘특훈’이란 특별한 처방을 내렸다. 대표팀이 16강 결전지 산티아고델에스테로에 도착한 지난달 31일 다른 선수들이 회복 훈련을 하는 동안 배준호는 운동장에 쓰러져 비명을 지를 만큼 ‘지옥 훈련’에 매달렸다. 배준호는 “근육 부상으로 뛰지 못해 떨어진 체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였다”면서 “덕분에 16강전엔 컨디션이 올라왔다. 앞선 경기에서 실력을 보여주지 못해 부담이 컸지만, 친구들 격려로 이겨냈다”고 전했다.
김은중호 젊은 전사들은 훈련을 시작할 때 ‘원 팀(one team)’이란 구호를 외친다. 끈끈한 동료애를 강조하기 위함이다. 김 감독은 “오늘도 벤치에 있던 선수들은 물론 온두라스전 부상으로 귀국한 (박)승호까지 21명 전체가 하나가 됐기 때문에 이길 수 있었다”고 했다. 이날 선수들은 승리 기념 촬영을 하면서 부상으로 중도 하차한 박승호(20·인천) 유니폼(18번)을 들어 보였다.
[스포츠팀ieconomyseoul@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