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부결된 체포안 다시 처리해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9일 헌법에 보장된 국회의원의 ‘불체포 권리’를 포기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또 윤석열 정부에 대해 압수수색·구속기소·정쟁에만 몰두하는 “압구정 정권”이라고 비판했고, 35조원 규모의 추경 편성을 제안했다.
이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저에 대한 정치 수사에 대해서 불체포 권리를 포기하겠다. 소환한다면 10번 아니라 100번이라도 응하겠다”고 말했다. 사전에 배포된 연설문에는 없던 내용으로, 이 대표가 이날 아침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불체포특권 포기를 선언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표는 “구속영장을 청구하면 제 발로 출석해 영장실질심사를 받고 검찰의 무도함을 밝히겠다”며 “자신들의 무능과 비리는 숨기고 오직 상대에게만 ‘사정 칼날’을 휘두르며 방탄 프레임에 가두는 것이 집권 여당의 유일한 전략”이라고 했다. 지난 2월 27일 위례 신도시·대장동 개발 특혜와 성남FC 후원금 등과 관련한 이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은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됐다.
이날 본회의 전 소집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도 최고위원 대부분은 이 대표의 ‘불체포특권 포기 선언’을 만류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지도부 인사는 “검찰의 정치 수사에 맞장구쳐 줄 필요가 없고, 실제 구속영장이 발부돼 구속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논의도 있었다”며 “하지만 이 대표가 현재 검찰 수사, 재판 진행 상황을 종합해 볼 때 불리할 게 없다는 판단을 한 것 같다”고 했다.
이재명 대표가 ‘불체포특권’ 포기를 말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이 대표는 지난 대선 중에도 불체포특권을 포기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지난 2월 대장동 개발 의혹 등으로 체포동의안이 제출됐을 때는 약속과 달리 불체포특권을 행사했고, 예상보다 적은 표 차(가결 139표, 부결 138표·기권 9표·무효 11표 등)로 부결돼 리더십에 상처를 입었다. 특히 이 대표를 포함해 민주당 의원 4명 전원(노웅래·이재명·윤관석·이성만)의 체포동의안이 부결되면서 ‘도덕적 해이’에 대한 책임론도 부각됐다. 이 대표 측 인사는 “이 대표의 뜻이 강하게 반영된 결정”이라며 “당 혁신기구도 곧 출범하는 상황에서 방탄 논란은 일단락 지을 필요가 있다는 고민이 컸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연설에서 “이재명을 다시 포토라인에 세우고 체포동의안으로 민주당의 갈등과 균열을 노리는 것인가. 그렇게 생각한다”며 “이제 그 빌미마저 주지 않겠다. 저를 향한 저들의 시도를 용인하지 않겠다”고 했다. 한동훈 법무 장관은 이에 대해 “좋은 이야기”라며 “다만 그걸 어떻게 실천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중요한 건 대한민국의 다른 국민들과 똑같이 형사 사법 시스템 내에서 자기 방어를 하시면 되는 문제”라고 했다.
현재 서울중앙지검과 수원지검 성남지청이 각각 백현동, 정자동 호텔 개발 특혜 의혹을 수사 중이고, 수원지검이 수사 중인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대북 송금 의혹에도 이 대표 연루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이들 사건과 관련해 검찰이 다시 구속영장을 청구할 경우 회기 중이라면 반드시 체포동의안 표결을 거쳐야 한다. 당 관계자는 “비회기 중이라면 당연히 영장심사에 출석하고, 회기 중이라면 민주당 과반 의석을 활용한 회기 변경을 통해 ‘비회기’를 만드는 것도 검토할 것”이라며 “어쨌든 체포동의안을 다시 표결에 부치는 일은 없게 하겠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은 지난 2018년 7월 강원랜드 채용 비리 의혹과 관련해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았는데, 당시 권 의원은 여야에 임시국회를 새로 소집할 때 공백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고 이 비회기 기간에 실질심사에 임했다. 당내에서는 공개적으로 이 대표의 결심을 평가하는 목소리가 여럿 나왔지만, 일각에서는 “지난 방탄에 대한 사과는 결국 없었다” “그때는 맞고 앞으로는 틀리다는 건가” “다른 사법 리스크 의원들에게 부담이 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국민의힘은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김기현 대표는 “사퇴를 요구하는 여론을 일시적으로나마 모면하려는 의도로 보이지만, 불체포특권 포기 약속이 그간 보여준 공수표의 반복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불체포특권을 남용했던 민주당 사람들의 체포동의안을 국회에서 다시 처리해야 하지 않겠나 싶다”고 했다. 체포동의안이 부결됐던 나머지 민주당 출신 의원들의 문제도 함께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대출 정책위의장도 페이스북에 “체포동의안 부결시켜놓고 불체포특권 포기하겠다니, 참으로 ‘재명스럽다’”고 했다. 유상범 수석대변인은 “이제 와 ‘구속영장이 오면 응하겠다’는 모습은 몰염치 극치”라고 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페이스북에 “만시지탄”이라면서 “돈 봉투 의혹 체포동의안 표결 전에 이 선언이 나왔더라면, 진즉에 대선 공약이 제대로 이행되었더라면 하는 생각을 떨굴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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