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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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전광섭

 

 

우리는 오늘 철수대열에서 빠진 것 같다. 자그마치 1주일분 씨레이션을 받고 소대별로 자리를 옮겨 모였다. 잠시 배낭을 배게 삼아 휴식을 취한다.

 

그토록 지겹게만 느껴지는 군목 박 대위가 또 나타났다. 성경책을 옆에 끼고 나의 3소대에서 자리를 잡는다. 깡마른 체구에 전투지 어느 골짜기에도 오신다. 날더러 예배드리잔다.

 

“전원, 휴식 끝 집합!”

 

박 대위는 성경책을 뒤척거리더니 한 구절을 읽어 주신다.

“내가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 그때 나는 저분이 반대로 말하는 줄 알았었다. 죽고자하면 죽지, 어떻게 산단 말이냐, 거듭 속으로 피식 웃었다.

 

병사들은 듣는 둥 마는 둥 졸음 투성이다.

그리고 간절히 기도하고 내게로 오더니, 날 잡고 힘차게 악수하고 껴안으며 어깨를 두드려 주고 홀연히 사라진다.

 

잠시 후 4개소대장이 중대장 앞으로 모인다. 중대장은, 오늘밤부터 또 매복근무를 하게 되었다고 설명하고는 각 소대별 근무지를 지적해 준다.

 

홈바산 하단부에 한 골짜기씩을 맡는다. 그리고 되도록이면 발포를 하지 말고 생포하라는 지시다. 몇 날 동안 잠복하며 적들이 우리배후의 ‘반케’라는 부락에 보급품을 가지러 올 것에 대비해서 그 길목을 지키는 것이다.

 

홈바산 골짜기를 60여일 샅샅이 훑었지만 별 적정 없이 하산하고 뿔뿔이 흩어졌던 잔당들이, 우리배후 마을에 물건을 조달하러 오는 거다. 앞은 홈바산 하단 골짜기, 뒤는 논·벌판 1.5km, 그 끝에 약 스무 채의 가옥이 있는 부락이다.

 

앞과 뒤에 적을 두고 매복 근무를 하게 된다. 특히, 나는 우편 끝에서 체포한 적 포로를 한데 수집해서 ×지점에 인계해 줘야하는 임무도 맡았다. 낮에는 최대한 몸을 낮추고 적의 눈에 발각되지 말아야한다.

 

나는 전방 홈바산 계곡 쪽은 3개 분대에 맡기고 배후에는 기관총을 배치한 화기분대 박종주 하사에게 할당했다. 그에게 배후를 살핌에 주 임무를 줬다.

 

전 소대원은 밝은 낮에도 거의 꼼짝 않고 자리를 이탈해서도 안 된다. 나는 더욱 신경이 곤두서서 전방과 후방을 번갈아 살피고 있다.

 

문제는 어둑어둑 땅거미가 질 때다. 뒤편 ‘반케’부락에서 커다란 불빛신호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생각으로는 큰 화경인 듯하다.

 

번쩍번쩍 잠시 후 또 번쩍번쩍... 분명히 우리 앞쪽 홈바산 골짝 어느 지점과 교신 중이겠지만, 이곳 매복지에선 앞의 불빛은 관측되지 않고 있다.

 

정글 숲에서도 높은 위치를 정해서 신호가 오갈 것임에 틀림없다. 다만 뒤쪽은 평지에 있는 가옥이라 시야를 가리는 게 없을 따름이다.

 

우리는 더욱 긴장할 수밖에 없다.

이윽고 좌측 골짜기의 2소대에서 적 5명을 생포했다는 전갈이다.

 

잠시 후 맨 좌측 끝 소대인 1소대에서 각각 두 차례에 걸쳐 7명을 생포했단다.

드디어 나의 3소대에도 3명을 생포했다.

 

그런데 무기를 소유한 자는 한명도 없다.

52세 ‘파홈타이’, 18세 ‘단’, 8세 ‘갼’ 이렇게 3명이…

이건 누가 봐도 적군(월맹정규군)은 아니다. 베트콩인 것이다.

 

‘베트콩Vietcon’..

이들은 '민족해방전선'이라 하여 후방지역 주민이면서 적과 내통하며 전쟁 물자를 운반하고 우군상황을 알려주는 첩자들이 대부분이며 낮에는 농민, 밤에는 베트콩이 되는 것이다. 꼭 이들은 애들을 데리고 다니거나 여자와 동행해서 가족처럼 위장하는 게 대다수다.

 

우군이 벌건 대낮에 철수하는 광경을 보고나서 밤중에 산에서 기어내려 오는 것이다. 그리고 맨 먼저 민간인복장인 이들이 앞에 나타나고 정황을 살핀 다음, 정규군이 필요에 따라 내려오는 게 보통이고 정규군은 거의가 산속 은둔지에 그대로 있기 마련이다.

 

한때 주간정찰 때 그들이 우릴 먼저 보고 후다닥 도주할 때 팽개치고 간 배낭에서 지갑을 뒤졌더니 붉은 별을 단 모자를 쓰고 정장한 그들 월맹정규군의 복장을 확인한 경우도 있었다.

 

내가 가장 우편에 자리 잡은 소대로서 작전명령대로 날이 밝기 전에 이들을 수집해서 ×지점에 인계해야 한다.(다음에 이어집니다)

[국가유공자·베트남참전 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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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전광섭의‘진주알들의 숨바꼭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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