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국정 운영 변할까
[이코노미서울=심재현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전화 통화를 하고 다음 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양자 회동을 하자고 제안했다. 이 대표도 초청에 감사하다면서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여당 참패로 끝난 4·10 총선을 계기로 윤 대통령과 제1당 대표의 회동이 윤 대통령 취임 2년 만에 성사될 전망이다. 두 사람 회동에선 국무총리 인선 등 정부 인사 문제를 비롯해 민주당 등 야권이 주장하는 각종 특검 법안 등 현안에 대해서도 폭넓은 대화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이 대표를 국정의 파트너로 인정하고 민생과 대외 문제 등 산적한 현안 해결을 위해 머리를 맞대겠다는 뜻”이라며 “총리 인선 등과 관련해서도 이 대표의 의견을 들어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 대표는 전화 통화 후 유튜브에서 “(1인당 25만원 지급)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만나서 이야기할 것”이라며 “개헌 문제도 여야 대화를 가능한 한 빨리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 통화는 윤 대통령이 제안해 성사됐다. 대통령실 참모진은 총선 이튿날인 지난 11일 윤 대통령에게 이 대표와의 통화를 건의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당시엔 가타부타 답이 없었는데 이날 이관섭 비서실장에게 이 대표 측과 접촉을 지시했다고 한다. 이 실장은 이 대표 측 천준호 당대표 비서실장에게 전화로 이런 뜻을 전했고, 이어진 윤 대통령과 이 대표 통화에서 윤 대통령은 “총리, 비서실장 등 인사 개편이 빨리 이뤄졌으면 만남 제안도 빨리 했을 것”이라며 전화가 늦어진 배경을 설명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 30분부터 5분간 이 대표와 통화하면서 “다음 주에 형편이 된다면 용산에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대통령실 이도운 홍보수석이 브리핑에서 밝혔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일단 만나서 소통을 시작하고, 앞으로는 자주 만나 차도 마시고 식사도 하고 또 통화도 하면서 국정을 논의하자”고 말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또 이번 총선에서 이 대표 등 민주당 후보들의 당선을 축하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초청에 감사의 뜻을 전한 뒤 “윤 대통령이 마음을 내주셔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고 이 수석은 전했다. 이 대표는 또 “저희가 대통령께서 하시는 일에 도움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의 어려움이 많다.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만나자”고 했다고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밝혔다. 강 대변인은 “(두 분 회동이) 담대한 대화의 기회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가 이날 통화에서 첫 양자 회동에 합의하면서 한 달여 남은 21대 국회 마무리와 새로 출범할 22대 국회에서 양측의 협치 문제가 본격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취임 후 여소야대 국회 의석 구도에서도 이 대표의 이른바 ‘영수(領袖)회담’ 제안에 응하지 않았다. 그런 윤 대통령이 4·10 총선 후 이 대표에 회동을 제안한 것은 이 대표를 국정의 파트너로 인정하고 협치에 나서겠다는 뜻을 담은 상징적 조치라고 대통령실 관계자는 설명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총선에서 나타난 의석 구도를 인정하고 남은 임기 3년을 야당과 대결이 아닌 협치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 회동에선 의제에 구애받지 않고 허심탄회한 대화가 이뤄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이날 의제 협의와 관련해 참모들에게 “너무 신경 쓸 필요 없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그런 만큼 윤 대통령이 검토 중인 국무총리 인사 문제를 비롯해 각종 입법 문제에 대해서도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현재 대통령이 검토 중인 후보군에 대한 이 대표 생각이나 의견을 들어볼 수 있을 것”이라며 “이 대표가 좋은 의견을 내 준다면 당연히 존중하지 않겠나”라고 했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가 5분간의 통화에서 회동에 전격 합의한 것을 두고 두 사람의 정치적 상황과 관련짓는 해석도 나온다. 윤 대통령은 여당인 국민의힘이 이번 총선에서 108석에 그치면서 제1야당인 민주당의 협조 없이는 국정을 뜻대로 이끌어가기 어렵다. 윤 대통령이 취임 후 정치적 유불리에 관계없이 추진하겠다고 공언한 교육·연금·노동 등 3대 개혁이나 최근 역점을 둔 의대 증원 등 의료 개혁도 의료계 반발로 난관에 봉착해 있다. 북한 문제를 비롯해 국제 정세도 불안하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일·북, 미·북 관계 개선에 대해 유연한 태도를 주문하는 건의도 윤 대통령에게 올라오고 있다”고 했다.
이 대표도 민주당의 총선 승리를 이끌어냈지만 여전히 각종 사법 리스크를 안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차기 대선 가도를 더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윤 대통령과 회담 등을 통해 제1야당 리더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의 회동 합의까지 상황은 롤러코스터를 탔다. 이날 오전 이 대표는 페이스북에 “협치를 빙자한 협공에 농락당할 만큼 민주당이 어리석지 않다”고 썼다. 이 대표의 언급은 최근 논란이 된 ‘박영선 국무총리, 양정철 비서실장 기용설’을 자신을 향한 협공(挾攻)으로 받아들인 것으로 해석됐는데, 공격의 한 축이 윤 대통령을 비롯한 여권이라면 다른 축으로 박영선·양정철로 대변되는 비명·친문계를 지목한 것이라는 평가가 민주당 안팎에서 나왔다. 이 대표가 윤 대통령을 향해 “당신이 상대해야 할 야권의 리더는 이재명”이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 대표는 총선 이틀 뒤인 지난 12일 “지난 2년간 대화와 협치, 상생이 실종된 정치로 많은 국민께서 실망하셨다”며 협치를 강조했었다. 그런데 일주일 만에 야권 인사 기용설에 ‘협공’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배경엔 이 대표의 차기 대선 구상과 관련이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윤 대통령이 비명·친문계와 손을 잡고 이 대표를 고립시키는 정계 개편을 시도할 경우 좌시하지 않겠다는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 아니냐는 것이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 회동에서 야당이 추진하는 해병대원 사망 사건과 김건희 여사 관련 특검 도입, 이 대표 관련 수사·재판 문제가 거론될지도 관심이다. 여권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허심탄회한 대화를 하겠다는 생각인 만큼 특검이나 사법 리스크 문제도 거론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도 “다만 윤 대통령이 앞으로 자주 만나자고 제안한 만큼 첫 만남에선 민생과 외교·안보 등 국정 현안을 논의하는 데 초점이 맞춰지지 않겠나”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