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세 ‘파홈타이’는 영감이며 몰골이 바싹 마른얼굴에 지병이 있는 건지 아주 약골로 보인다.
18살 ‘단’은 눈이 부리부리하고 광대뼈가 튀어나온 아주 인상이 더러운 산 속의 사내 같았다.
셋 다 맨발인데 특히 ‘단’은 양쪽 엄지발가락 쪽의 발바닥이 딴딴하여 옆으로 불거져 나왔는데 사막의 타조발굽 같은 모양새다. 셋 중에 이놈이 유독 신경이 쓰인다. 눈동자가 좌우로 움직이며 곧장 곁눈질을 해재낀다.
나는 선임하사 ‘박관중’ 중사에게 특별히 잘 감시하라고 일러놓고 영감과 젊은 놈 둘은 밧줄로 손을 묶게 했다.
그리고 일주일 양식 c-레이션 박스로 ㄷ자 모양의 임시 울을 쌓게 해서 그 안에 가두었다. 어차피 날 새기 전에 인계·인수 차 끌고나가야 하기 때문에 불과 몇 시간 동안만 각별한 감시가 필요하다고 다시한번 잘 지킬 것을 당부했다.
8살짜리 꼬마 ‘갼’은 ‘김시동’ 무전병과 전령 ‘허은’ 병사에게 맡기고 밤 새기만을 기다렸다. 꼬마는 비스킷과 초콜릿을 주니까 마냥 싱글벙글이다.
지겨운 전쟁 통에 가엾은 한 알의 진주알이다.
너도 숨바꼭질의 멤버냐!
약 1시간이 흘렀을까..
향도 ‘변동철’ 하사가 낮은 자세로 내게 왔다. “소대장님, 두 놈이 튀었습니다.”
박 중사는 여전히 졸음 속에 빠져서 철모와 소총을 옆에 두고 박스에 기대어 자빠져 자고 있는 중이다.
다행히 영감은 후방담당 화기분대에 걸려서 다시 잡혀왔지만 젊은 놈 ‘단’은 놓치고 말았다.
“아~이를 어쩌나!”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곧바로 ‘반케’부락에 진입해서 놈을 다시 잡아야겠다는 결단을 내렸다. 우리의 매복진지가 모두 노출되었고 뒤에서 닥칠 역습을 걱정했던 것이다. 2분대 박 하사 팀과 몇몇 고참 병사를 불러 마을로 진입한다는 결심을 전했다.
다시 붙들려온 ‘파홈타이’영감한테 ‘단’의 집을 아느냐고 상황판에 그림을 그리며 물어보니까 고개를 몇 번이고 끄덕거리며 묶인 두 손으로 손짓을 연방한다.
지금은 추수 후라 논은 물도 말랐고 벼를 잘라낸 민 바닥이라 우리가 달리는 데는 별 거침이 없어 보인다. 영감을 앞세우고 급한 발걸음으로 부락을 진입한다.
부락입구에 나무를 잘라내고 기둥뿌리만 남은 그루터기가 있는데 갑자기 ‘파홈타이’가 묶인 두 팔로 그 기둥을 감싸 안고 요지부동으로 더 걷질 않고 고함을 지르기 시작한다.
“따이한~따이한~ 하이~! 하이~!” 초췌한 그 몰골에서 고요한밤중에 목청껏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따이한(대한)한테 잡혀왔으니 하이 하이(철수 철수)하라는 울부짖음이다. 목숨을 걸고 고함을 쳐서 도망가기를 알리는 상황.
지금 돌이켜보면 자기는 죽을 각오하고 주민을 도피시키고자 하는 갸륵한 의(義)의 영감이라 고개 숙여 껴안아 주고 싶은 심정이다. 그 때는 적의 역습을 막아야한다는 일념 외에 딴생각을 할 여유가 없고 즉시 ‘입을 틀어막아라’고 명령했다.
박상정 분대장이 “소대장님 가시지요”하며 나의 소총을 들어준다. 우리는 사전에 철수 신호로 수류탄 한발을 까겠다는 약속을 했었다. 불타는 집들과 다소 떨어져 있는 바나나 밭에다 힘껏 투척했다. 꽝! 하는 폭발화염과 불꽃을 뒤로하며 매복지로 돌아왔다.
모두 15명의 포로인데 2명이 없어진 상황이다. 아직도 캄캄한 밤이지만 포로들을 복판에 한데 모으고 그 주변에 다이아몬드 대형으로 둘러서서 ×지점으로 인솔한다. 약 10분을 걸었을까,
너른 풀밭 건너 숲 쪽에다 후랫쉬 전등을 반짝거렸다. 금방 불빛신호로 응답해 온다.
인수팀의 안내로 숲 안쪽으로 들어서니 제법 널찍한 마당이 나타난다. 포로들을 한 줄로 세워놓고 인계한다.
그 때 월남정부군 장교가 나타나더니 각자의 주민증을 검사하는 거다. 베트콩이 주민증 하나쯤이야 금방 만들어 소지한단다. 주민증도 갖추지 않은 멍청이들은 단 한명도 없다.
그런데 중위계급장을 단 월남정부군 장교는 주민증소지자를 그 자리에서 모두 풀어주어 집으로 돌려보내려는 제스처다.
아 또 열이 북받쳐 오른다.
“이 새끼 이거 뭐하는 놈이야!”
나는 그 장교의 멱살을 쥐고 흔들었다.
발이 질퍽거리는 늪을 지나며 온통 뻘 칠갑을 하며, 이렇게 잡아 온 병사들의 노고도 전연 아랑곳 하지 않은 채 풀어주려는 그 놈도 베트콩과 한 통속인양 생각되어, 순간 주먹이 날아갈 뻔했는데 인수팀의 대위 한분이 급하게 오더니 나를 말린다.
“전 소위 이놈 이거 건드리면 큰일 나요.”한다.
뭐가 큰일 나는 건지. 일단 우리는 매복지로 원위치 했다. 도대체 베트콩주민들과 정부군과는 어떤 관계인가? 정말 아리송할 따름이다.
그때 그시기에 정글까지 나돌던 입소문은 ‘미국에서 신형무기를 정부군에 보급하면 다음 날 아침에 베트콩의 손에 들어가 있다’라고 했던 게 결과적으로 공산통일로 현실화 된 것이 아닌가 하는 말과 맞아 떨어지고 있었다.
어느 시기나 할 것 없이 군인은 군인다워야 하고 백성은 백성다워야 하는 게 나라를 지켜나가는 근간이 아닌가하고 생각해 본다.
자~ 날이 밝아오면 어떤 작전명령이 하달될지…(다음에 이어집니다)
[국가유공자·베트남참전 장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