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1-25(월)
 


“저는 힘이 날 때까지, 내가 부를 수 있을 때까지 불러보고 싶습니다.”

 

[이코노미서울=연예팀] 가수 남진이 1970년대 라이벌 구도를 이뤘던 나훈아의 은퇴 선언을 접하고 보인 반응이다. 남진은 나훈아의 은퇴가 아쉽다면서도 할 수 있을 때까지 가수 활동을 이어가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남진은 30일 공개된 MBN 인터뷰에서 “(나훈아가) 빨리 은퇴한다는 얘기를 들었더니 좀 아쉽기도 하다”며 “저는 힘이 날 때까지, 내가 부를 수 있을 때까지 불러보고 싶다”고 했다.

 

남진은 지난 4일 배우 김승우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에 출연했을 때도 인터뷰 중 나훈아의 은퇴를 언급하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남진은 “난 믿어지지 않는다. 한창 노래할 나이인데 내가 그 나이면 좋겠다”며 “(은퇴 소식을) 매스컴에서 봤는데 ‘뭐가 잘못됐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믿어지지 않는다. 개인적인 사정이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이라고 했다.

 

이 방송에서 남진은 나훈아와 라이벌 구도를 이뤘던 1970년대를 추억하기도 했다. 실제로 당시 두 사람의 라이벌전은 한국 가요사에 다시 없을 명장면 중 하나로 꼽힌다. 특히 목포 출신의 남진과 부산 출신의 나훈아는 각각 전라도와 경상도를 대표하며 음악 팬들을 모았다. 이와 관련해 남진은 “나훈아씨와 라이벌로 그 시대를 이뤘다는 게 큰 힘이 됐다”며 “이런 명콤비가 또 없다”고 했다. 이어 “우리 같은 양자구도는 없었다”며 “노래 스타일과 분위기도 다르지, 또 출신 지역도 완전히 달라서 더 뜨거웠다”고 했다.

 

‘개인적으로도 소통을 하는 편이냐’는 질문에는 “친구였으면 술도 먹고 했을텐데 나이 차이가 있다. 내 친구 제자였다”고 답했다. 남진은 “나훈아를 1968년도에 처음 봤다. 서울에서 친구를 만났는데 그 친구가 음악 학원 차리고 제자 양성하고 있다면서 제자 하나를 부르더라. 근데 그 사람이 나훈아였다”고 회상했다.

 

앞서 나훈아는 지난 2월 가요계 은퇴를 시사한 데 이어, 지난 27일 인천 연수구 송도컨벤시아에서 열린 전국 투어 콘서트 첫 날 은퇴를 확정 지었다. 데뷔 58년만이었다.

 

이날 공연 초반부터 나훈아는 “우선 인천 공연은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말했고, 이후에도 여러 차례 ‘은퇴’의 말을 입에 담았다. 가수로는 은퇴하지만, 작곡가로는 활동하는 것 아니냐는 일부 추측에 대해서는 “혹시 누구에게 곡이라도 써주며 연예계에 기웃기웃 하지 않을까 싶겠지만, 전 (애초에) 후배 가수들도 잘 모르기에 누구에게 가사나 곡을 주지 않는다”며 “살짝 옆 눈으로도 연예계 쪽으로는 안 쳐다볼 거다”고 선을 그었다. 또 일각에서 제기한 ‘건강이상설’에 대해서는 “금년 2월 스물 다섯 가지 피검사를 했다. (너무 건강해) 의사 선생이 깜짝 놀랐다”고 반박했다.

 

공연 전 편지에 ‘은퇴’를 직접 안 쓴 것은 “싫어서 안 썼다”고 했다. “꼭 밀려가는 느낌이라서. 전 아직 더 할 수 있다. 그래서 (미리) 마이크를 내려놓는다”고 했다. 그는 “(유튜브에서) 어떤 점쟁이는 내년에 내가 죽는다, 아픈 게 보인다더라. 금년 2월달에 스물다섯 가지 검사를 했다. (너무 건강해) 의사 선생이 깜짝 놀랐다”며 자신의 건강검진표를 무대 위 전광판에 띄우기도 했다. 은퇴 후 “어떻게 살 것인지”는 이렇게 말해 긴 박수를 받았다. “안 가본 데 가볼기다. 안 묵어본 거 묵어불 끄다. 안 봐본 거 볼 끄다. 제 다리가 멀쩡할 때 저 하고 싶은 거 할 낍니다. 여러분, 하고 싶은 거 하고 사셔야 합니더. 쌔가 빠지게 벌은 돈 다 쓰고 죽어야 됩니더!”

 

신비주의를 고수해 온 그답지 않게 솔직한 사생활 언급도 이어졌다. 곡 ‘마이웨이’ 도중 “언론에서 제가 세 번 결혼했니, 네 번 했니 하는데. 농담 아니고 전 결혼식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며 가사의 ‘Oh No, Oh No’를 능청스레 이어 불러 객석 웃음보를 터트렸다. 그는 “걷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이 노래가 제 인생과 비슷하다”고 했다.

 

평론가 사이 의견이 분분했던 자신의 공식 프로필(1947년생, 1966년 데뷔)의 일부도 바로잡았다. 살이 비치는 핑크색 상의, 찢어진 청바지 등 총 15벌을 곡 사이사이 무대 위 가림막을 두고 갈아입었는데, 대부분 옷에 ‘1967년~2024년’이 새겨져 있었다. 곡 ‘고향역’ 땐 1967년 출발해 2024년 멈추는 기차 영상을 틀었다. 자신이 여기는 가수 출발점을 ‘1967′년으로 암시한 것. 나훈아는 공연 도중 역대 대통령 사진들과 함께 “11명 대통령이 바뀌고도 전 아직 노래 중”이라며 길었던 가수 생활을 돌아보기도 했다.

 

나훈아의 대표곡 ‘공’의 무대도 이날은 더 묵직했다. 그는 공연마다 이 노래 후렴구 ‘띠리~띠리띠리 띠리~’에 맞춰 만담처럼 속내를 터놓기로 유명하다. 이날도 “이 이야기는 꼭 하고 (노래를) 그만둬야겠다”며 공의 선율에 맞춰 “전 북쪽을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저긴 이상한 집단이지 나라가 아니다”라고 외쳤다. “북쪽 김정은이라는 돼지는 사람들이 굶어 죽거나 말거나 살이 쪄 가지고. 저거는 나라가 아니다. (김정은) 혼자 다 결정하니깐, 실컷 얘기하고 조약을 맺어도 혼자 싫다 하면 끝이다”라며 비판을 쏟아냈다. “이제 전쟁도 돈이 필요한 시대다. 이스라엘이 이란의 미사일을 막는 데 하루 1조를 써서 99%를 막았다고 한다. (북쪽에서) 치고 싶어도 칠 수 없을 만큼 강해져야 한다. 힘이 있어야 평화도 있다”는 그의 호소에 ‘옳소!’ ‘그렇지!’ 관객 호응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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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힘 날 때까지 부를 것”… 나훈아 은퇴 선언에 ‘라이벌’ 남진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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