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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회상(回想)!]  
중앙경제신문(jaeconomy.com)   
기사작성자 | 2020.01.02 16:26 |

» 일러스트/전광섭

[일러스트/전광섭]

1965년 전후(前後) 우리는 20대의 청년(靑年)이었다. 1961. 5.16혁명(革命) 직후 육군 장교후보생을 거처 육군소위(少尉)라는 초급장교 계급장을 달고 최전선(前線) 소대장의 임무(任務)를 마치고 중위(中尉)가 되어 대대(大隊)단위의 참모(參謀)를 경험(經驗) 할 나이였다.

 

65. 1 월남전(越南戰) 참전(參戰)이 결정(決定)되고 213일 비둘기 부대(部隊)가 최초로 파병(派兵)되면서 월남전쟁(戰爭)의 한국군 참전은 시작(始作)되었다.

 

그 즈음 우리의 젊은 초급장교들은 전쟁이란 실전(實戰)의 두려움 속에 파병이란 과제(課題)를 안고 고심(苦心) 하기에 이른다.

 

참전?

살아 돌아올 수는 있을까?

어떤 혜택(惠澤)이 주어질까?

 

군인(軍人)으로서 미래(未來)에 대한 꿈과 참전이 주는 신분상의 이익(利益), 그리고 참전수당(手當), 기껏 한 달 급여(給與)18천여 원 남짓, 쌀로 치면 1.5가마 정도(程度), 젊은 장교(將校)인 우리들 대부분(大部分)은 가난한 집안의 자식들이었다. 여유(餘有)가 있는 집안의 자식(子息)이라면 굳이 군인의 길을 택할 이유(理由)가 없었다.

 

여기서 초급장교의 월 수당(手當)120$은 나를 유혹(誘惑)하기에 충분(充分)한 조건(條件)이었다. 이 때의 환률(煥率)은 그린빽(本土弗)기준으로 275/1$였다. 그러나 우리에게 지급(支給)되는 수당은 미군(美軍)과 같은 군표(軍票)였다.

 

그린빽이란 보통 시중(市中)에 유통(流通)되는 화폐(貨幣)를 말하며 군표란 미 국방성(國防省)에서 참전국(參戰國) 주둔(駐屯) 미군에 지급하던 준화폐를 일컫는다.

 

참전을 선택(選擇) 할 것인가, 이대로 현실(現實)에 만족(滿足) 할 것인가, 선택의 기로(岐路)에서 좌고우면(左顧右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참전자(參戰者) 대부분이 그랬듯이 가난이란 굴레가 참전 쪽으로 마음이 기울 수밖에 없었다. 생사(生死)는 운명(運命)에 맡기고 앞으로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고 효도할 수 있는 절호(絶好)의 기회(機回)라고 생각한 것이다.

 

결심(決心)하고, 울고 불며 말리는 가족(家族)들의 만류(挽留)를 뿌리치고 부산항에 정박(碇泊)해 있던 미국 수송선(輸送船) ‘가이가호에 몸을 맡겼다.

 

수송선은 고급(高級) 호텔이었다. 한 방에 장교 4명이 함께 기거(寄居)하는 이층 침대에 양변기(洋便器)가 설치(設置)되었다.

 

창피한 일이지만 양변기 사용법도 그때서 배웠다. 그러나 왠지 그 자세(姿勢)로는 문제(問題)해결이 어려웠다. 일부 선배(先輩)장교는 깔판을 딛고 올라 앉아 손잡이를 거머쥐고 몹시 불안(不安)한 자세로 문제를 해결했다.

 

분명 깔판에 발자국이 남는다. 하루에 한두 번씩 필리핀 늙은 웨이터가 들락거리면서 청소(淸掃)도 하고 타월과 휴지를 걸어놓는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휴지도 목욕 타월도 한 둘씩 사라진다.

 

웨이터가 드나들며 고개를 몇 번 갸웃 뚱 하더니 드디어 입을 열었다. “깟뎀, 빠킹텐영어(英語)라곤 “I am a boy” 밖에 모르던 우리들은 그게 욕()이란 걸 모른 채 놀라서 그저 눈만 껌뻑거릴 뿐이다. 그것도 나이 많은 외국인(外國人) 노인이 화를 내는 것이다. 너무나 황송(惶悚)할 따름이다.

 

왜 저러나?

이후(以後) 한 선배 장교는 그만 들어오면 하던 일을 멈추고 무릎을 꿇어 바른 자세를 취한다. 아마도 그가 슬쩍한 모양이다!

 

식당(食堂)엔 라운드 테이블이 배치(配置)되어 있고 열 명이 둘러앉도록 되었다. 영문(英文)의 메뉴판도 비치(備置)되었고 필리핀 웨이터가 와서 주문(注問)을 받는다.

메뉴를 들여다보니 빽빽한 글자는 모두 모르는 단어(單語)들 뿐, 아는 단어가 별로 없다. 에라 모르겠다 “no10, ok?” 옆에 있는 놈도 same. 또 그 옆의 놈도 same 어느 덧 all same same이다.

 

음식(飮食)이 나왔다. 이게 웬일인가! 넓적한 접시위엔 똥 덩어리처럼 내 팽겨 쳐진 이상한 모양의 아이스크림 한 덩어리 뿐, 게 눈 감추듯 입에 털어 넣고는 아무리 기다려도 웨이터는 소식(消息)이 없고 .... 식사시간(時間)은 끝났다. 무슨 말을 할 수가 있어야 하소연이라도 하지....등신들처럼 머리를 긁적이며 문 밖을 나서는데 입구에 사과를 모아놓은 함지박이 보인다. 누가 볼 새라 집어 들고는 주머니에 쑤셔 박으며 재빨리 도망치듯 문을 나선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나 창피하고 한편 웃기는 모습이다. 그렇게 선실(船室)로 돌아와서 뭇매를 맞는다. “, 알지도 못하면서 그딴 음식을 주문했냐는 거다.

 

세상에 가난한 촌놈이 양식(洋食)을 먹어 봤어야지! 포크 나이프도 처음이며 쓸 줄도 모른다.

다음부터는 실수(失手)를 말아야지”, 거듭 다짐은 하지만 메뉴판의 단어들은 생소할 뿐 전혀 생각나지도 않고 사전(辭典)을 뒤적여 보아도 일반적인 비지타블. 밋볼과 빵에 관한 것들 뿐! 구체적인 야채나 고기 빵의 이름도 모양도 맛도 모른다.

 

이토록 식당에서 메뉴 선택(選擇)에 애를 먹는 게 비단 나뿐만이 아니다, 대부분이 고통(苦痛)을 함께 나누었다. 사실(事實)은 부잣집에 와서 실컷 먹는 건 고사(固辭)하고 오히려 굶주려야만 했던 참으로 어리석은 올챙이였다.

 

그래도 들은 건 있어 가지고 장교는 국제신사(國際紳士). 매너와 체통(體統)을 지켜야한다이 말씀이 필리핀 늙은 웨이터로 부터 욕을 얻어먹고도 그게 창피한 건지도 모르며 히죽거리던 초라한 내 모습이 다시 떠오른다!

 

배가 월남의 항구(港口)에 닿으니 멀리서 포성(砲聲)이 울리고 하선(下船)이 하루 정도 늦춰 졌다. 진짜 전쟁터에 왔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순수(純粹)했던 어리석은 올챙이 장교가 부대(部隊)에 배속(配屬)되어 대원(隊員)들을 이끌고 정글을 누비며 정말로 열심(熱心)히 전장(戰場)에 임했다.

 

적진(敵陳)에 숨어들다가 습격(襲擊)도 당하고 수류탄의 공격(攻擊)도 받았지만 필요(必要)할 때는 매복(埋伏)이나 기습(奇襲)도 가하는 전투(戰鬪)를 하면서 18차에 걸쳐 적정(敵情)을 탐지하는 전장감시(戰場監視) 임무를 무사(無事)히 마치고 살아서 귀국(歸國)을 하고보니 다행(多幸)이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게 그때 당시(當時) 우리들이 처했던 상황(狀況)이며 자화상(自畵像)이다.

한데 우리 스스로가 무슨 애국(愛國)이요 공헌(貢獻)이며 희생(犧牲)을 운운하며 거창하게 떠벌리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세월(歲月)이 흐르고 먹고 사는 형편(形便)이 나아지다 보니 뜻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칭송(稱頌)해 줄 뿐이다.

 

이렇듯 우리들 파병이 국가 경제발전(經濟發展)의 동력(動力)이 된 것을 크게 기뻐하고 더욱이 그 당시 양심(良心)에 바탕하여 국가(國家)를 발전적으로 경영(經營)하던 박정희 대통령과 휘하(麾下) 참모(參謀)들에게 경의(敬意)를 표하는 바이다.

또한 국가경제(國家經濟)가 눈부시게 빠른 속도로 발전(發展)하고 보니 나름 자긍심(自矜心)도 생겼다.

 

자본주의(自本主義)에 걸맞게 경제적 여유를 누리다 보니 돈에 대한 욕심(慾心)도 생기고 필요에 따라 파월 전투수당(戰鬪手當)의 당위성(當爲性)을 따지게 되었다. 수당의 90%가 정부(政府)에 귀속(歸屬)되어 국가 발전기금(發展基金)으로 쓰였다는 사실(事實)을 뒤늦게 알게 되었고 최근(最近)의 정부에 그 환급(還給)을 요구(要求)하기에 이르렀다.

 

사실은 무분별(無分別)한 정부가 광주사태 희생자(犧牲者)에 대한 무절제한 보상(補償)과 세월호 전복사고(顚覆事故)에 대한 터무니없는 보상만 이루어지지 않았던들 파월 전우회(戰友會)의 기여금(寄與金) 반환 요구는 없었을 지도 모른다. 그게 우리들 자긍심(自矜心)의 원천(源泉)이기 때문이다.

 

이는 결코 파월 장병들의 건전(健全)한 자긍심을 양심 없는 정치(政治) 모리배들이 자신들의 부귀영달(富貴榮達)을 위하여 무절제(無節制)하게 국고(國庫)를 낭비(浪費)함으로서 그 자긍심이 무참히 짓밟힌 결과(結果)가 되었다.

 

군인은 항상 명예(名譽)를 좇아 희생으로 봉사(奉仕)함을 사명(使命)으로 한다.

한데 국가의 의무(義務)를 다하지도 못한 범죄자(犯罪者)들이 국가를 경영(經營)하면서 존중(尊重)받아야 할 명예(名譽)와 국법(國法)을 유린(蹂躪)하니 어찌 분개(忿慨)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바라건데 저간의 상황(狀況)을 되돌릴 수 없으니 국가가 정상궤도(正常軌道)에 오르고 경제가 부흥(富興)되고 양심적인 정권(政權)과 현명한 지도자(指導者)가 교체되어 국가를 슬기롭게 경영하는 날 넉넉한 국고(國庫)로 파월 장병들을 위로(慰勞)하는 차원(次元)에서 떳떳하게 보상되기를 바랄 뿐이다.

 

다만 상기 무절제(無節制)한 보상을 집행(執行)하여 국고를 낭비한 범죄집단(犯罪集團)을 색출(索出)하여 법률에 응당(應當)한 처벌(處罰)을 가하여 사법정의를 바로세우고 실추(失墜)한 명예가 회복(回復)되고 박정희 대통령의 숭고(崇高)한 애국정신(愛國精神)이 후대에게 면면(綿綿)히 고양(高揚)되기를 바라면서 그 시절(時節)을 회상(回想)해본다.

감사(感謝)합니다.

[곽원신·갑종장교 제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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